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 - 중세의‘화려한 반역아’,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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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가 그것이다. 이미 그녀는 1982년《바다의 도시 이야기》, 1992년부터《로마인 이야기》로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명성이 높다. 그녀는 겉모습은 일본인이지만, 마음과 영혼은 이탈리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오랜 시간 이탈리아에서 거주 중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작가가 오래 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라고 한다. 마치 마음의 빚처럼 남아 있다가 드디어 집필에 들어갔다. 무려 45년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특히 이 책은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를 다루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황제 프리드리히 2세야말로, 중세에 살면서 르네상스의 문을 연 사람들이다.” - p27 


 저자가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해서 쓴 계기도 흥미롭다. “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냥 마음이 가는 남자라.”는 것이 이유다. 아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저자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저자가 처음 역사에 대한 글을 쓴 것은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8세기경의 로마에 대한 이야기로 점프했다가, 다시 중세 시대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그녀가 쓰는 중세 시대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라고 한다. 


 프리드리히 2세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독일 국왕이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아버지 하인리히 6세가 돌연 사망한 것이었다. 서른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였다. 사인은 말라리아였다고 한다. 

 그의 부인, 즉 프리드리히 2세의 어머니, 콘스탄체는 노르만 왕조의 유일한 후계자로 시칠리아 왕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둘이 결혼하면서 하인리히 6세가 자연스럽게 시칠리아 왕국도 통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콘스탄체는 어떻게든 황위를 지켜서 아들에게 물려줘야했다. 이 때 그녀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새로 즉위한 인노켄티우스 3세에게 시칠리아 왕국에서 왕위를 인정해주면 독일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애초부터 거친 독일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아이가 따뜻한 이탈리아 남부에서 성장하기를 원했다. 


 마침내 프리드리히는 1198년 5월 17일, 시칠리아 왕이 된다. 불과 세 살의 나이에 말이다. 그리고 그가 네 살이 될 때 그의 어머니 콘스탄체는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마흔의 나이에 유일한 아이를 임신하고, 마흔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또 한 번 중요한 결정을 했다. 그의 후견인으로 로마의 교황 노켄티우스 3세를 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녀는 시칠리아 왕국을 교황의 영유지로 기꺼이 인정하고 내놓았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우선 든든한 후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 교황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교황의 그림자는 그에게 큰 힘을 줬다. 물론 프리드리히는 이를 별로 반기지 않았다.


 시칠리아의 왕국, 섬에서 자유분방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익혔다. 당시 시칠리아 왕국에는 선대 황제가 데리고 온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이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프리드리히를 차지하려고 했다. 


 “두 파 모두 아직 미성년인 프리드리히를 수중에 넣어 섭정이 됨으로써 시칠리아 왕국 전체로 세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p41 


 프리드리히는 결코 만만치 않은 아이였다. 10여 년간 혼자 공부하면서 다방면의 학문을 익혔다. 무술실력도 갈고 닦아서 보통 이상의 수준이 되었다. 무엇보다 왕으로서 권위를 제대로 보여줘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줬다. 


 로마 교황은 점점 야생마처럼 변해가는 프리드리히를 견제하기 위해서 정략결혼도 시키고, 서른세 살의 베라르도 대주교를 열여섯 살의 프리드리히 곁에 뒀다. 하지만 모두 통하지 않았다. 열 살 많은 그의 부인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특히 그녀가 스페인에서 지참금(?)으로 데려온 5백 명의 기사는 큰 힘이 되었다. 베라르도 대주교도 그의 평생 파트너가 되었다.


 그는 독일에 있던 라이벌 작센공 오토와 대결하고 각 봉건 영주들의 충성심을 확인해야 했다. 단 10명의 시종을 데리고,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를 건너서 독일까지 건너간 그의 용맹함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반황제파에 의한 납치극에서도 벗어났고, 목숨을 건 여정을 했다. 


 그의 저돌적인 여행은 성공했다.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1세는 십자군 원정에서 용맹을 떨쳤다. 다른 제후들은 그에게서 할아버지의 용맹한 모습을 본 것 같다. 


 “그들은 눈앞에 나타난 열일곱 살이 22년 전 십자군 원정 중 오리엔트에서 죽은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직계임을 새삼 떠올렸다.” - p72 


 1권에서는 프리드리히 2세의 6차 십자군 원정, 그레고리 9세 교황과의 대결, 그리고 2차례의 파문, 반 황제파인 북부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동맹군과의 전투를 다룬다. 


 이 모든 대결을 승리로 이끈 프리드리히 2세는 명실공이 최고의 황제로 군림한다. 그가 마흔을 넘었을 때다. 알프스를 경계로 북부 지역, 즉 독일, 남부 지역 이탈리아를 모두 손아귀에 쥐었다. 로마 교황이 제일 우려하던 상황이 결국 벌어졌다. 지나친 황제의 권한 강화였다.


 프리드리히 2세는 최초의 국립대학인 나폴리 대학, 그리고 법치국가 실현 등 다양한 치적을 쌓았다. 특히 그는 어릴 적부터 다문화, 다언어를 접하면서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집권제를 통해서 봉건제도를 무너뜨렸다. 중세시대를 끝낸 배경에는 그의 이와 같은 사고 방식 덕분이었다. 


 - 한 줄 요약 :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의 어린 시절, 중년 시절을 다룬다.

 - 생각과 실행 : 프리드리히 2세는 대담하고 용감하면서,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졌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로마 교황과 갈등이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왕권이 약했던 중세 시대를 벗어나서,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고 법치주의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 학문과 예술에도 높은 관심을 보여서 신성로마제국의 전성기를 마련했다. 특히 그동안 적대적이던 아랍권과 평화를 유지하고, 본인도 아랍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면서 호감을 살 수 있었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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