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일본 소설을 만나러 가다 -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현대 일본 문학의 흐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미나코 지음, 김정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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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버블 경제, 1990년대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경기 침체, 2000년대의 불평등 사회의 도래, 2010년대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은 격동의 반세기를 보냈다. 1960년대 경제발전 후 80년대 버블, ‘잃어버린 20년’, 불평등 사회 등. 사람들의 상실감은 갈수록 심해지고, 그것이 소설에도 꾸준히 반영되었다. 2010년대에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뿐만 아니라, 기업소설, 간병소설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책도 유행한다.  


 내가 처음 접한 일본 소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가의《설국》이다. 눈의 고장에서 펼쳐지는 게이샤와 주인공의 일화, 그러면서 느껴지는 고독감. 탐미주의 색채가 강한 이 소설이 나에게 준 느낌은 아름다움이었다. 설국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접한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처음에 이 소설을 읽고, ‘이게 무슨 이야기지?’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낯선 내용에 책을 한동안 읽지 않았다. 그런데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책을 다시 들었는데,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다. 


 이 소설로 하루키 작가는 1979년에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다른 작품들보다 특이한 점이 많았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대학교 1학년 여름에 항구가 있는 마을로 귀성한 ‘나’의 이야기로, 텍스트를 해석해보려고 도전해보지 않으면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고, 단지 ‘한여름 동안의 추억’을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p120

 

 이후로 일본 작가의 책을 곧잘 읽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류, 오쿠다 히데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최근에는《한자와 나오키》의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기업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암울한 직장생활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소설이 인기를 끈 것은 현실에서의 직장생활이 활기가 없고 싸울 기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 p342


 모든 소설이 와 닿은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문화적, 정서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고 특유의 허무주의, 개인주의적 사고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점차 그렇게 바뀌면서(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익숙해졌다. 


 인생무상의 달관한 태도는, 메이지 시대(1868년 ~ 1912년) 후기에 등장했다고 한다. 젊은 세대를 ‘청년(靑年)’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도 이때였다. ‘청년’은 일종의 유행어였다. (청년이 일본어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시대별로 일본의 사회적인 정서와 유행 흐름은 다음과 같다. 


 “1960년대의 히피, 1970년대의 삼무주의세대(무기력, 무관심, 무책임), 1980년대의 신인류, 2000년대의 초식남 등 젊은이의 상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서른이 넘은 후에는 주로 일본의 자기계발서적 위주로 읽었지만, 왠지 다시 한 번 일본 문학을 짚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작가는 꽤 많다. 무려 60년간의 일본 소설을 추적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뒤에 별첨으로 있는 작가의 리스트 중에서 약 1% 정도만 아는 작가였다. 


 소설과 그 시대 상황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이 작가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을 읽다보면 시대상과 배경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 1960년대 지식인의 추락, 2장 1970년대 기록문학의 시대, 3장 1980년대 유원지로 변하는 순문학, 4장 1990년대 여성작가의 대두, 5장 2000년대 전쟁과 격차(불평등)사회, 6장 2010년대 디스토피아를 넘어서다. 


 “1890년에 대일본제국헌법이 발포되자 폭력적인 ‘장사’는 배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등장한 것이 꾸물대며 계속 고민만 하는 햄릿형이 ‘청년’들이었습니다.” - p17


 일본의 소설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을 담은 ‘사소설’, 그리고 노동자 계층의 어려움을 담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있다. 

 사소설은 주로 약한 인텔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여자 친구나 애인에게 차이는 다소 무능력한 남자들을 묘사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후쿠자와 유키치가《학문의 권장》(1872년)에서 학문의 목적은 결국 ‘입신출세’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을 추구한다는 것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실패한 인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이러한 문학에 대항하여 나온 것이 대중문학이다. 대중문학은 ‘시대소설’, ‘역사소설’, ‘탐정소설’, ‘가정소설’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일본 내에서는 순문학과 대중문학, 즉 통속문학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다. 과연 어떤 문학이 더 가치가 있는가이다. 당연히 정답은 없지만, 순문학이 진정한 문학이고, 대중문학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을 펴는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대중문학을 비평하기에는 그 성장과 영향력이 순문학보다 훨씬 크다. 수많은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드라마 또는 영화로도 제작된다. 또한 대중문학은 클로즈 엔딩으로 결말이 어떤 식으로 나지만, 순문학은 오픈 엔딩으로 결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힘든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해답을 찾게 하는 것은 고역이기 때문에, 대중문학이 더 유행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에서는 두 가지 문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준점이 있다고 한다. 


 아쿠타가와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순문학, 나오키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엔터테인먼트입니다.” - p34 

 

 그렇다면 최근의 상황은 어떤가? 2008년 리만 사태, 2011년 3월 11일에 터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일본을 더 불안한 상황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보다는 강력한 권력을 선택했고,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다. 


 디스토피아적인 소설이 붐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기업소설, 간병소설 등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뤘다. ‘블랙기업’을 화두로 한 소설도 등장했다.《청년 백수 파란만장 신입 일기》,《협소저택》등이 대표적인 예다. 


 2010년대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대’였습니다. 2000년대부터 축적된 불온한 공기가 가득해져서 한꺼번에 터진 듯했습니다.” - p330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분석한 방대한 양의 일본 소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일본 사회의 시대적 흐름이 소설에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문득 우리나라의 소설도 그 흐름이 어떤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그동안 짧은 문제, 간결한 표현 등에 익숙해져서 한국보다는 일본 소설을 더 많이 읽었다는 점이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한국 소설도 다시 한 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일본 소설의 기록을 남기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 책이다. 일본 문학에 관심 있거나 또는 문학의 역사적 흐름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말이다. 


 “이 책이 이 반세기 동안의 사회와 소설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한 줄 요약 : 1960년대 이후 60년간 일본 소설의 흐름을 알 수 있다. 

 - 생각과 실행 : 소설은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반영한다. 일본 소설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도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담은 소설이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형식의 소설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실에서 사죄를 못한다면 소설을 통해서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앞으로 일본의 인구 감소(한국도 마찬가지지만)와 다문화 가정의 확대로 어떤 식으로 소설의 내용이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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