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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평점 :
책의 주제가 꽤 흥미롭다. 해적 한 명이 어떻게 세계사를 바꿔놓을 수 있을까? 다소 황당한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저자의 치밀한 조사와 분석을 보면서 절로 수긍이 갔다. 특히 저자가《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의 스티븐 존슨이라면 말이다.
이 책은 17세기의 가장 악명 높은 ‘해적왕’ 헨리 에브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목에 전 세계적으로 수배령이 떨어졌고, ‘인류 모두의 적’이라고 불렸다.
책의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1695년 9월 11일, 수라트 서쪽 인도양에서 해적왕이 당시 최고의 제국이라고 일컫는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공격한 것이다. 이 충돌이 향후 세계사에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무굴제국의 인구는 유럽 전체의 인구보다 많았고, 엄청난 금은보화를 보유한 부유한 국가였다.
“일등항해사 에브리가 찰스2세호에 올라 템스강을 내려올 때, 무굴제국에서는 1억 5,000만 명 이상이 아우랑제브 황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당시 유럽 전체의 인구는 1억 명에 미치지 못했다.” - p99
당시 해적질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영국인이 많았고, 영국 왕의 비호를 받으면서 해적질을 했다. 이렇게 국가에서 정식으로 허락받은 해적질을 ‘사략’(Privateering)이라고 불렀다. 이는 에드워드 1세(1271년 ~ 1307년)가 해적에게 공격을 받은 영국 상선에게 ‘보복 행위’를 허용하면서 부터다.
원래는 보복을 허락받은 사략선이 자신을 약탈한 해적선만을 나포했으나, 그런 구분을 지키지 않고 마구잡이로 약탈을 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 중에서 유명한 인물이 엘리자베스 1세 시대(1558년 ~ 1603년)의 프랜시스 드레이크다. 그는 1570년대 말 세계를 일주했고,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항구를 공격해 거의 초토화시켰다. 이렇게 해적질을 일삼았지만, 기사 작위를 받고 부와 명예를 쌓았다.
어떻게 보면 그가 많은 해적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눈부신 성공으로 드레이크는 영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원형, 즉 향후의 모든 해적이 평가되는 기준이자 해적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 p68
물론 겉보기와 다르게 선상 생활은 아주 열악했다고 한다. 100명 이상이 수개월씩 바다를 항해하고, 배의 공간은 테니스 코트보다 그다지 넓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선원이 생활하는 갑판 아래의 넓이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 공간이었고, 높이는 1.5미터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창문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폐쇄공포증에 걸리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더군다나 고약한 음식과 각종 질병은 선원의 삶을 더 피폐시켰다.
‘스페인 원정’을 위해서 바다로 항해한 헨리 에브리의 상황이 대략 이러했다.
하지만, 항해는 새로운 신분을 위한 모험과 기회였다.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다들 돈을 벌기 위해서 나섰다.
“계급 이동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던 그 시대에는, 보물을 찾아 바다로 나가는 것이 신분 상승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길이었다.” - p110
스페인 원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서, 결국 반란이 일어났다. 마침내 헨리 에브리가 선장이 되어서 해적선를 지휘했다.
무엇보다 해적의 규칙이 인상적이다. 전리품은 공평하게 나누어갖는데, 선장이 2, 나머지는 모두 똑같이 1이라고 한다. 이는 영국 해군이나 원정 해운 등과 비교해서도 일반 선원의 몫이 훨씬 높은 것이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민주적 합의’다. 1720년대에 작성된 해적 합의에는 “중대한 사건을 결정할 때 모두가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해적이라는 것이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에 이러한 당근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러한 민주적 의사 결정은 미국독립혁명, 프랑스대혁명보다 거의 한 세기를 앞서는 것이라고 한다.
헨리 에브리가 이끄는 해적선은 자신의 배보다 3배가 더 큰 무굴제국의 보물선, 건스웨이호를 공격했다. 1695년 9월 11일이었다. 건스웨이호에는 훨씬 더 많은 대포와 선원들이 있었지만, 대포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어서 에브리가 이끄는 팬시호의 대포가 아주 우연히 상대편의 중앙 돛대를 맞추었다. 선상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도 건스웨이호의 선원들은 금방 전의가 꺾였다.
이로써 에브리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당시 약 2,000만 달러 수준의 보물을 확보했다고 하고, 선원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이들의 노략질과 건스웨이호에 있던 인도인들에 대한 폭행, 그리고 우연히 성지순례를 다녀오던 무슬림 여인(그중 몇몇은 무굴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의 친척)에 대한 강간 등으로 인도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불똥은 수라타와 봄베이에 있던 영국 동인도회사로 튀었다. 무자비한 해적질의 배후에 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과 무역을 통해서 얻는 막대한 수익을 무굴 제국의 황제와 정치인들은 무시할 수 없었다. 동인도회사의 존 게이어와 새뮤엘 애니슬리는 위기를 기회로 이용했다. 오히려 이번 해적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군함이 인도의 상선들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이들이 인도의 해상권을 장악한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동인도회사가 그로부터 60년 후에 인도 아대륙에서 제국적인 세력, 즉 1억이 넘는 백성을 지배하는 ‘회가 국가’가 될 거라는 건 꿈에도 꾸지 못했다.” - p278
결론적으로 헨리 에브리의 해적선이 무슬림 상선을 공격하면서, 오히려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해상권을 장악한 결과를 나았다. 이것은 나중에 동인도회사가 인도 내에서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무굴 제국의 황제가 상선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동인도회사를 폐쇄시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그렇다면 인도가 자주권을 좀 더 오래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후로도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은 계속 되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해적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을 해소했으면 한다.
어쨌든 영국 정부는 해적들을 잡기 위한 ‘인간 사냥’을 실시하고, 재판을 통해서 더 이상 ‘해적 국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 사건 이후로 실제로 영국은 해적과 선을 그으면서,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 한 줄 요약 : 영국 해적의 인도 무굴제국 상선을 공격하면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 생각과 실행 : 당시 강력한 인도 제국이 몰락한 계기는 소극적인 무역 활동 때문이다. 이는 종교적 요인 때문에 바다로 못 나간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반면 영국은 활발한 교역 활동을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보면서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완성했다. 결국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인지하고, 개혁과 혁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