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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구마 겐고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6월
평점 :
일본 건축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우선 구마 겐고라는 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프로필을 살펴봤다. 1954년생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라고 한다. ‘작고, 낮고, 느린’ 삼저주의로 일본 건축의 한 축을 받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산토리미술관’, ‘대나무집’ 등이 있다.
저자의 외할아버지, 아버지도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집을 손보고 증축할 때, 각자의 의견을 갖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러한 집안 배경이 어릴 때부터 저자의 건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모던 세대인 아버지는 다다미를 깐 와시쓰(일본식 방)를 모두 플로링(마루를 까는 널빤지)으로 교체해서 서양식 방으로 바꾸었다.” - p95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디테일한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격자문의 격자도 꼭 ‘정사각형’이어야 한다는데 집착했고, 목수가 실수로 직사각형을 만들면 다시 제작하도록 만들었다. 저자도 이 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고 술회한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의 정사각형 집착에 반발심으로 저자는 정사각형을 피하고, 직사각형이 더 안정감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고집스러운 아버지도 집 공사를 할 때, 가족들과 협의할 정도로 민주적인 과정을 거쳤다. 아들과 나이차가 무려 45년차가 나는데도 말이다.
“집을 고치는 일만큼은 식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이 가족회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103
이러한 성장배경 때문인지, 저자는 디자인에 대한 철학, 그리고 고집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뛰어난 디자이너는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다.
저자는 이를 ‘거부권’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디자인을 대할 때의 자세는 ‘NO’다. 이를 위해서 회의 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게 좋아?”, “이게 마음에 들어?”, “이 정도로 만족이라고?” 등.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디자인의 수준을 높인다.
저자는 도쿄대 건축학과를 졸업했을 정도로 수재다. 당시 1964년 도쿄올림픽,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로 건축과 건축가는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 건축학과의 커트라인은 갈수록 높아졌다. 하지만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건축학과의 인기는 급락했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도전의 기회로 생각했다.
“오일쇼크가 건축의 몰락도 ‘예상 밖’이 아니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드디어 기다리던 시대가 찾아왔다는 느낌이었다.” - p234
오히려 저자는 기존 건축 방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모더니즘 건축을 연구했다.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겠다는 각오로 말이다.
특히 저자는 ‘무경계’를 추구한다. ‘좋은 건축’과 ‘나쁜 건축’을 두고 논쟁하는 것을 싫어한다. 도시와 전원, 국가의 경계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작은 건축’에 의미를 둔다. 사실 20세기의 건축들이 대부분 ‘큰 건축’을 지향했기 때문에, 차이점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지도 교수, 학생들과 함께한 아프리카 취락 연구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하라 교수는 첨단 디자인이나 포스트 모던보다는 오히려 점차 쇠퇴해가는 소수민족의 취락을 열심히 연구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교수의 특이점에서 이끌렸고,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의 취락을 조사했다.
교수와 학생이 두 대의 차량을 타고, 아프리카의 취락을 탐험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잠도 모래 위에서 노숙을 했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취락을 찾으면, 도면으로 남겨서 ‘미래 건축의 힌트’를 찾았다고 한다.
“이 여행은 지금도 꿈에 자주 나타난다.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취락으로부터 ‘작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 p284
책에는 구마 겐고 건축가가 설계한 다양한 건축물의 사진이 실려 있다. 저자가 설계한 건축물을 보면, 확실히 자연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농가, 굴, 다리, 바닥, 토방, 대숲 등이 저자가 주목하는 장치다. 특히 ‘바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닥은 사람을 땅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즉, 자연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바닥이다.
이 책을 통해서 일본뿐만 아니라, 건축의 역사와 사상을 돌아볼 수 있었다. 건축이나 디자인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나서, 건축과 인간의 관계를 좀 더 따져보게 되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건축물을 좀 더 눈여겨봐야 될 것 같다.
- 한 줄 요약 : 일본 건축의 역사, 구마 겐고의 ‘작고 낮고 느리게’의 건축을 엿볼 수 있다.
- 생각과 실행 :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공간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은 자연을 잊고 살고 있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세상을 각박하게 느끼는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울 때, 자연이 주는 에너지만큼 큰 것도 없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건축은 보다 자연 친화적이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