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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는 패배를 모른다 - 한국 프로야구 40년
허구연 지음 / 다할미디어 / 2021년 5월
평점 :
“야구는 그냥 경기가 아니다. 초록빛 다이아몬드가 새겨진 내야 위에서 펼쳐지는 인생이다.” - p143
140g이 넘고, 둘레는 약 23cm. 이 공에는 많은 사연과 스토리가 있다. 사람들은 공의 궤적을 따라서, 울고 웃는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저럴까라고 궁금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야구의 매력을 알게 되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생기고, 경기나 결과를 챙겨보게 된다. 팀의 승리를 곧 나의 승리로 동일시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야구 덕후가 되는 것이다.
1982년 OB 베어스가 프로야구 원년 우승 후 팬클럽에 가입했다. 당시 쓰고 입었던, OB 베어스 모자와 잠바는 큰 자랑거리였다. 초등학생 3학년 이후 지금까지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는 이유다. 박철순 투수가 병원에서 사인해서 보낸 엽서는 당시 1983년의 어린 소년에게 큰 감동이었다. 박철순 투수는 당시 최고의 스타였다. 프로야구 원년에 등판해서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 더군다난 22연승 대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결코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프로야구 초기, 마이너리그에서 익힌 체인지업 등을 선보여 국내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p90
부상을 딛고 매번 일어서는 그를 사람들은 ‘불사조’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정상의 자리에서 너무 빨리 내려와야 했다.
이 책은 허구연 야구해설위원이 생생하게 증언하는 야구의 역사다. 책의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보다 객관적인 사실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난 40년간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참고로 미국 메이저리그는 1903년(내셔널 리그는 1876년), 일본 프로야구는 1936년에 생겨서, 각각 약 118년, 8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이하여 내 주변에서 발생했던 일이나 직접 관여했던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단의 탄생, 5대 왕조와 명장들, 한국 프로야구의 별들, 오늘도 그라운드를 달립니다, 생애 한 번은 ‘드림팀’을 꿈꾼다, 세계 속의 한국 야구, 방송도 야구만큼 신나게, 인프라에서 시작해 인프라로 끝난다, 시대도, 야구도 변한다.
목차 중에서 ‘드림팀’ 부분이 흥미롭다. 우리도 그동안 프로야구 역사를 되새김하면서, 과연 포지션별로 누가 베스트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투수에는 우완에 역시 선동열, 좌완에 류현진이다. 마무리도 역시 예상대로 오승환이고, 치열한 1루수 부분은 이승엽 선수가 차지했다. 유격수도 역시 이종범이다.
저자가 꼽은 포지션별 스타 선수는 저절로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이미 한국 프로야구 탄생의 비화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는 부분이다. 군부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서 시작한 3S 정책(Sports, Screen, Sex)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 태생이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많은 가족과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1981년 12월 11일, OB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삼미 슈퍼스타즈, 롯데 자이언츠, MBC 청룡의 6개팀이 정식 출범했다. 이 중에서 현재 10개 팀 중 명맥을 유지하는 팀은 OB/두산 베어스(서울), 삼성 라이온즈(대구), 롯데 자이언츠(부산)다. 40년 전과 비교해서 구단 수, 관중 수, 경기장 시설, 선수 수준 등 많은 방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야구 역사뿐만 아니라, 그동안 프로야구의 별들을 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KBO리그에서 367경이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일본에서 162경기 10승 4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0점대 평균자책점 5시즌, 주니치에서 1점대 평균자책점 2시즌 등, 데이터가 말해주듯이 최고의 투수였다.” - p83
바로 해태(지금의 기아)의 선동열 투수이자 전 삼성 감독의 대기록이다. 당시 0점대 자책점 기록을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은 인간인가? 외계인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산 팬인 나에게 선동열은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너무 컸고, 그가 몸만 풀어도 상대팀 타자들이 추가 득점을 힘들 것 같다고 체념한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다행히(?) 그가 일본리그로 떠나면서, 마음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가 당시 20대 초반에 만약 1984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새로운 역사를 썼을 것이라는 아쉬운 점이 남기는 한다. 그에게 한국과 일본 무대는 너무 좁았다. 적(?)이지만 훌륭한 적이었다.
물론 선동열 투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롯데의 최동원 투수는 103승 74패 26세이브 2.4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역사적인 선수다. 그는 메이저지그와 계약한(진출은 안했지만) 최초의 한국 선수라는 점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그 역시도 당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최소 10승은 거뒀을 것이라는 스카우트의 의견도 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7전 가운데 혼자 4승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롯데의 첫 우승을 이뤄냈다.” - p85
두 명의 투수가 맞대결을 펼친 최고의 명승부는 1987년 5월 16일로 역사상 최고의 맞대결로 꼽힌다. 최동원 선수가 15이닝 209구, 선동열 선수가 15이닝 232구를 던졌다. 경기는 결국 무승부였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이닝과 투구 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명승부다. 실제로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이 이야기를 다뤘다. 이들의 공식적인 맞대결은 1승 1무 1패였다.
투수뿐만 아니라 뛰어난 활약을 펼친 타자들도 많다. 연습생 출신인 빙그래/한화 이글스의 장종훈 타자, 그가 1991년 한일슈퍼게임에서 터뜨린 초대형 장외홈런은 지금도 일본 나가라가와 구장에 기념비로 기록이 남아 있다. 1994년 4할에 육박한 타율, 20개 홈런, 무려 84개의 도루와 196안타, 바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다. 더군다나 그의 아들인 이정후 선수는 이미 KBO 리그에서 맹활약하면서 2017년 신인왕 수상을 했을 정도다.
또한 KBO 최초의 안타, 타점, 홈런으로 타격 3관왕, 100호 홈런, 200호 홈런 등 숱한 ‘1호’ 기록을 남긴 이만수 선수, 감독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만수를 좋아한다. 아니 존경한다. 후배지만, 선수 시절에는 그만큼 노력을 많이 하고 은퇴 후에도 봉사를 많이 한 인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p115
허구연 해설위원이 개인적으로 아끼는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본인이 좋아하는 선수들에 대한 자질로 세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 야구를 잘하고, 둘째 팬의 사랑을 받고, 마지막으로 좋은 품성과 바른 생활인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선수가 그들이라고.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딛고 우뚝 선 선수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프로로서 실력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품성이 바른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야구계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다.
이외에도 이 책의 이야기 거리는 아주 풍성하다. 더군다나 사진도 많이 있어서 당시 기억을 되새길 수 있다. 내가 기억하던 것이 이렇게 책으로 남아서 좋고,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가 100년이 되더라도 참고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허구연 해설위원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을 시청했다. 여전히 야구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나중에 나이가 들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끊임없이 열정을 보이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한 줄 요약 : 한국 프로야구 40년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 생각과 실행 :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질적으로 더 성장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하고, 또한 미국이나 일본에서 활발한 스포츠 마케팅이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이 야구를 보면서, 꿈을 키우고 땀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한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