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련 - 선지식과 역사를 만나는 절집 여행
제운 옮김, 양근모 사진 / 청년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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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절에 종종 다녔다. 어린 나이에 혼자 법당에 앉아서 부처님과 마주 한 적이 있다. 아무런 말씀을 안 하고, 가만히 어딘가를 쳐다보는 부처님의 고즈넉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템플스테이나 절에서 수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책 《주련》은 다시 한 번 나에게 숨겨진 욕구를 일깨워줬다. 저자는 편집자이면서 출판인이다. 역시 글을 업으로 하시는 분답게 글 속에 깊이가 느껴진다. 한 마디, 한 마디 허투루 넘길 이야기가 없다. 또한 저자가 직접 절을 찾아서 느낀 점을 글로 옮겼기 때문에, 마치 함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44곳의 절을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월정사를 빼놓고는 못 가봤다). 왜 하필 마흔 넷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절에는 보통 ‘주련’이 걸려있다. 주련은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문구”를 말한다. 이러한 문구는 주로 ‘시구’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시구를 읽을 수도 없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절의 ‘주련’의 해석을 소개하고(번역은 제운 스님이 하셨다), 절에 얽힌 이야기와 인생의 지혜에 대해서 설명한다. 

 특히 절에서 수행을 하셨던 유명한 고승과 그 분들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깨달음을 얻은 선승일수록 말 한 마디에 무게감을 더 느낄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사리탑’이 모셔진 합천 해인사에는 여전히 스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그 죄업이 하늘을 넘쳐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지라. 둥근 수레바퀴 붉은 빛을 토하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 p109


 스님의 열반송(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평생을 수행에 몰두하신 스님도 ‘죄업’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인간이 가진 ‘업보’(전생에 지은 못된 짓으로 말미암아 지금 세상에서 받게 되는 불행이나 죗값)란 그 끝이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연 스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후세에 제대로 전해지고 있느냐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라는 스님의 법어는 그냥 단순한 유행어로 남은 것일까? 

 

 안타깝게도 스님의 존재는 점차 잊혀지고,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많지 않다. 스님은 오히려 대중들이 ‘말’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를 바랐다. 스스로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승을 숭배하고, 말 한 마디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것보다 그 시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화두를 갖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44개의 절들은 경치나 풍경이 모두 아름답다. 그 중에서 남해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남해 보리암은 뛰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보리암은 보문사, 홍련암과 더불어 3대 관음도량으로 불린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사진으로 봐도 정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실제로 가서 본다면 그 감동은 더할 것 같다.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절에서 바라본 바다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해수관음과 나란히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한려수도,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라 했다. 한숨처럼 탄성이 터졌다.” - p385 


 강화도 마니산에 위치한 정수사는 아담한 절이다. 대웅전과 설법당 겸 요사, 삼성각, 다실이 전부다. 위풍당당한 누각도 없다. 그야말로 스님들 몇 분이 머물러 수행하는 공간으로서 절제심의 발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절을 찾는 분들에게 제격이 절인 것 같다. 세종 5년에 지어진 법당과 통나무를 깎아 꽃병을 아로새긴 문창살이 ‘보물’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절의 목조 건물이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조선 초에 만들어진 건축물은 확실히 귀중한 유산이다.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 


 이 절의 법담에 있는 주련이다. 결국 선과 악의 구별도 의미가 없고, 내가 보는 것을 믿는 것도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이 책은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선지식을 만나다’이다. 경허, 만공, 청담, 춘성, 운허, 해안, 동산, 성철 스님 등 고승과 절의 이야기를 다룬다. 스님들의 말씀과 행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두 번째 장은 ‘역사를 만나다’이다. 과거 역사와 절의 사연을 다룬다. 신라시대, 고려시대 등의 인물과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장은 ‘마음을 쉬다’이다. 저자의 마음과 절의 사연을 잘 엮은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의 위치를 대부분 찾아봤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는 절의 역사와 사연, 고승, 말씀, 역사적인 인물, 풍경 등이 다양하게 있다. 뿐만 아니라 절에 있는 주련의 내용도 살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불교에 관심이 없더라도 절의 역사와 사연을 알기에 적합한 책이다. 


 “주련은 단박에 혀에 착 감기는 맛이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는 쓴맛과 같다.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생각을 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한 줄 요약 : 절을 둘러싼 수행자와 가르침을 배울 수 있다. 

 - 생각과 실행 : 인생무상이라는 것은 인생의 허무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오히려 새로운 살 길을 찾기 위함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절도 수행을 위한 하나의 공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 화두를 갖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 답은 오직 본인만이 찾을 수 있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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