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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유산
장웨이 지음, 조성환 옮김 / 파람북 / 2021년 3월
평점 :
도연명(365년 ~ 427년)은 동진 시대(317년 ~ 420년)의 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29세에 관리로 시작해서, 13년간 근무를 하다가 벼슬자리를 그만두고 은거하였다. 그 유명한 귀거래사를 남긴 채.
동진은 서진(265년 ~ 317년)의 후예다. 서진은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위, 촉, 오를 통일했다. 후한시대 말기 100년간의 혼란을 종식시킨 것이 바로 서진이었다. 많은 이들은 이제 태평성대를 읊어야 했으나, 서진은 부패하기 시작했고 결국 유연의 전진에게 멸망 했다. 이후 강남에 세운 망명 왕조가 바로 동진이다. 하지만, 동진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하기 시작했다. 도연명이 공직 생활을 할 때는 조정에는 이미 간신배로 넘쳐났고, 백성들의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뛰어난 문인이 나오고, 작품이 탄생했다. 저자는 이를 놀랄만한 에너지를 분출한다고 묘사했다. 즉, 사람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그 억울함과 분노를 어딘가에 풀어야 하고, 문화와 예술이 대표적인 해소 수단이다. 그 유명한 ‘건안칠자’, ‘죽림칠현’이 모두 이 시기에 출현했다.
“역사에서 보면 국가가 분열과 혼란의 상태에 처할 때가 가장 비참하고 가장 고통스런 시기다. 하지만 사상과 예술 방면에서는 왕왕 진기한 꽃을 피우곤 했다.” - p30
특히 위진 시대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이 시기를 종종 춘추, 전국시대와 비교하는데, 오히려 이때보다 더 혼동의 시기였다. 이러한 ‘정글의 시대’에서 백성들과 지식인들은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찾아야했다. 도연명이 선택한 것은 ‘은거’였다. 은거를 통해서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지키고 살아남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 한곳에서 기다리며, 스스로 읊조리고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음미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았다. 그는 당시 고민에 빠진 지식인처럼 다른 것에 정을 붙였다. 예를 들면 너무 많은 술을 마셨다.” - p36
그는 이렇게 홀로 술을 마시며 자신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가 술을 마시며 쓴 시이다.
“술 한 잔을 비록 혼자 들지만, 잔 다하면 병 저절로 기운다.” - <음주 20수> 가운데 제7수
그는 은거하면서, 100여 편이 넘는 시문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남조 시대 양나라 소명태자 소통(501년 ~ 531년)이 편집한《문선》에 실리면서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이 책은 신라 원성왕 4년(788년)이 만든 ‘독서삼품과’ 중에서 ‘상품’의 과목으로 들어갔다. 고려 시대에는 그의 작품이 더욱더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남송의 주희(1130년 ~ 1200년)가 도연명을 충신으로 추앙하면서 그의 시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상나라 말기, 군주에 대한 충성을 지키기 위해서 산속에 은거한 백이와 숙제와 비견할 만했다. 당시 도연명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이 바로 환현(369년 ~ 404년)이고 유유(363년 ~ 422년)였다. 동진의 무관이었던 유유는 동진을 멸망시키고, 송 왕조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유유는 진의 마지막 황제 진 공제(418년 ~ 420년)를 잔인하게 살인했다. 이들은 사회를 어지럽히고,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혼란의 시대를 만들었다. 더군다나 그의 조부는 동진 왕조의 중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는 그의 마음을 흔들 기에 충분했다.
도연명은 직접적인 비난 대신에 완곡하게 현실을 한탄하면서 시를 남겼다.
“군자를 지기를 위해 죽는 법. 칼 들고 연나라 서울 나선다. 백마는 넓은 길에서 우는데. 격앙되어 내 행차 전송한다.” - p49 <형가를 읊으며>
그는 ‘은사’이지만, 보통 은사와는 달랐다고 한다. 은사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어느 정도 자본과 명성이 있어서, ‘은거’의 토대를 마련한다. 그런데 그는 가난했다. 몰락한 관리 출신이기 때문에 곤궁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가 노동을 한 이유는 일단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도 “밥 소쿠리와 표주박은 자주 비고, 거친 베옷을 겨울에도 입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의 삶 자체가 소박하고 진솔한 이유다.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 삶이 그랬다. 돈이 없었고, 그것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곤궁하게 살았지만, 술을 마시면서 글을 썼다. 다른 문인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그는 혼자 생활하고 경작하며 사고하고, 끊임없이 스스로 읊조리고 기록하며 건강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에 종사했다. 그가 받드는 토지, 그의 모든 예술은 바로 실제 생존의 주석이자 증명이다.” - p54
후세에 그의 삶을 칭송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의 삶이 꼭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홀로 고립되어 산다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관직 생활을 하면, 사회의 부조리를 인정해야 했고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태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사상적으로도 억압받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에게 남은 무기는 ‘시’였다.
“도연명은 가능한 한 문명이란 유약하고도 지구적인 무기를 써서 투쟁을 진행하였는데, 그의 삶에서 가장 대단한 부분이고 사람으로서 사람 노릇하는 가장 위대한 부분이다.” - p52
시를 쓰고, 노동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인생을 보냈다. 천천히, 천천히 자신의 생명을 연소하면서, 그렇게 보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버텨냈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말이다.
“도연명은 굶어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신념, 정신은 도리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시종 ‘버티는’ 영혼이었다.” - p98
그의 인생과 시를 돌아보면서, 도연명의 삶은 칭송할 것도, 안타까워할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혼란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투쟁한 것이다.
- 한 줄 요약 : 정글과 혼란의 시대에 그는 문명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 생각과 실행 : 어려운 시국에는 살아남는 것, 버티는 것 자체가 승리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제일 잘 표현하는 방식은 바로 글을 통해서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