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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평점 :
“장벽 안에 포함되었느냐, 밖에 남겨졌느냐에 따라 번영과 결핍, 삶과 죽음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장벽을 넘어 들어가고, 반대로 나가려는 사람이 생겨난다.” - p12
《아메리칸 더트》라는 소설책이 있다. 이 책은 멕시코의 카르텔을 피해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모자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만큼 멕시코 국경 탈출을 생생하게 전한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기차를 불법으로 타고, 카르텔과 미국 국경 감시대를 피하고, 사막을 건너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멕시코 국경을 넘으면서 매년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올 정도다. 미국에서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위험한 곳을 통해서 국경을 넘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벽 안에 포함되느냐, 밖에 남느냐가 한 사람, 가족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장벽의 시간》은 불편한 진실을 다룬다.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장벽을 자랑하는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다. 철조망으로 완벽하게 장벽을 만든 후 24시간 양측의 군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쪽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자유를 억압당하면서 살아야하는 것일까?
책에서 저자는 5개의 장벽을 다룬다. 베를린 장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 미국-멕시코 장벽, DMZ 장벽, 보이지 않는 장벽이 그것이다. 보이지 않는 장벽은 보호 무역이나 무역 전쟁과 같은 국가 간의 장벽을 말한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설치되었다. 당시 베를린의 서쪽은 영국, 프랑스, 미국이, 동쪽은 소련(구 러시아)이 점령하고 있었다. 문제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탈출이 계속 이어지면서, 동독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게 된다. 빠져나가는 인력들은 젊은 층이 많았고, 엔지니어, 의사 등 기술직과 전문직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독 건국 이후 매년 12만 명에서 19만 명 수준이던 이탈자 수는 최대 33만 명까지 늘었다고 한다. 결국 동독 정부는 빗장을 걸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다소 허술하게 만든 바리케이드를 뚫고 주민들이 계속 탈출했다. 그러다가 10년 뒤에는 동독에서 더 견고하게 장벽을 설치했다.
“장벽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동독 정부는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약 150km 길이 베를린 장벽 감시에만 훈련된 경비 병력 5만 명이 필요했다.” - p61
그나마 동독과 서독은 꾸준한 교류를 이어갔다. 동독에서 이주 신청을 하면 합법적으로 서독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또한 서독인은 연간 30일까지 동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서독은 동독의 정치범을 ‘프라이카우프’라 불리는 정책을 통해서 현물을 지급하고 데려왔다.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더 빨리 무너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장벽은 무너졌고, 1990년 8월 23일 독일은 통일되었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연소 수상이 된 앙겔라 메르켈이 동독의 물리학자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녀는 출신신분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골고루 기용하면서, 독일이 재탄생하도록 앞장섰다.
“메르켈은 대연정을 통해 정당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널리 활용했다.” - p83
물론 통일의 후유증은 컸다. 독일 통일 이후 30년간 통일 비용으로 무려 2,700조 원 이상의 거액이 투입되었다. 실업률도 18%까지 올랐다가 6% 대로 떨어졌다. 또한 서독인을 베시, 동독인을 오시라고 해서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차별하기도 한다. 고작 40년간의 분단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미 70년 가까이 분단을 겪고 있는 한반도는 어떠한가? 막대한 통일 비용도 문제지만, 국민 정서도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조선족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출신, 남한 출신으로 서로 간에 차별이 더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DMZ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의 어느 장벽보다도 견고하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각각 2km씩 자기 진영 쪽으로 물러나 비무장지대 DMZ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러게 만들어진 비무장지대는 서쪽은 임진강 하구, 동쪽은 강원도 고성으로 이어지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렀다.” - p259
물론 북한에서도 남한 뉴스를 듣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남한의 발전상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워낙 주민들을 강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통일이 어려워 보인다. 철마는 달리고 싶지만, 그 단절이 너무 길고 깊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 미국-멕시코 장벽은 다르다. 베를린 장벽은 서독으로 자유를 찾아서 떠나는 동독 국민들을 막기 위해서 동독이 장벽을 설치했다. 한국의 DMZ는 양측에서 쌍방의 국민들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2km의 비무장지대를 놓고 철책을 만들었다. 각자의 국가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반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자국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장벽을 만들었다. 즉, 동독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면, 이 두 개의 국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은 것이다. 국력이 막강한 이 두 나라가 장벽을 없앨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막는다는 대의명분으로 장벽을 설치했지만, 여전히 많은 팔레스타인이 불법으로 장벽을 넘고 있고, 그 중에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장벽은 하나의 팔레스타인을 둘로 쪼개버렸다. 가족끼리 생이별을 하거나, 또는 일자리나 생업이 장벽 너머에 있다면 매번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1947년 1월 유엔의 결정에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을 56% 확보하고, 반면 팔레스타인에게는 남은 44%가 주어졌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30% 정도였고, 실제로 소유한 땅도 10%에 불과했다. 결국 팔레스타인에게 불리한 결정이었고, 이때부터 갈등의 씨앗이 심어졌다. 유엔의 분할 안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서 더 많은 땅을 확보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고 장벽까지 설치한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과거 멕시코 영토의 절반을 취한 후 현재의 미국을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아리조나 등 서부의 대부분은 멕시코 땅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무력으로 취하고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물론 이 넓은 영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멕시코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를 무력과 계략으로 빼앗은 미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이후 강대국의 자리에 들어선 미국은 이민자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특히 나라의 부패로 새로운 세상을 찾는 멕시코 및 남미 국가 이민자들을 막았다. 이는 미국의 경제와 치안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굳이 장벽을 치면서 막대한 국세를 낭비하는 것은 잘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을 통해서 장벽에 얽힌 슬픈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모쪼록 우리나라의 DMZ도 평화롭게 개방되어서 남북이 왕래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적어도 분단 100년이 되기 전에 말이다.
- 한 줄 요약 : 장벽은 국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교류를 막는 악영향이 더 많다.
- 생각과 실행 : 앞으로 남은 장벽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장벽을 철거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DMZ는 평화롭게 개방되길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마음의 장벽을 먼저 없애야 한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