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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 사회적 순위 매기기 게임의 비밀
피터 에르디 지음, 김동규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0년 11월
평점 :
우리는 평생 비교를 하거나 당하면서 살고 있다. 어릴 적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와 비교 당하고, 사회에서는 나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과 비교된다. 저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비교하는 것을 상향 비교, 그보다 못한 것을 하향 비교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낀다. 물론 내가 힘들 때는 하향 비교를 해서 힘을 내고, 분발하고 싶을 때는 상향 비교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어떻게든 외부의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각종 10대 순위는 객관성이라는 환상을 심어줄 뿐 실제로는 주관적인 분류에 의존한다.” - p23
즉, 저자는 이러한 비교 그리고 순위 정하기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순위는 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랭킹에는 객관성을 포함한 항목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를 저자는 객관성에 관한 현실과 환상 그리고 심지어 조작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영화 평론을 들어보자. 영화 평론가들의 평론은 영화에 대해서 평점이 엇갈리고, 또한 대중의 평가와도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과연 누구의 랭킹이 맞는 것일까? 평론가의 생각은 수치화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평론가들의 의견을 보면서 비판할 때도 있지만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론가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우리가 제일 먼저 랭킹을 접하는 것은 온라인 뉴스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면 순위가 나온다. 순위는 조회 수가 많거나 회사에서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서 분류가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순위 상단에 오른 기사를 궁금해 하고 클릭한다. 그러면서 이 기사는 계속 조회 수가 증가하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맨 처음 이 기사를 노출시킨 로직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기사를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 회사의 경영진이 보수주의라면 어떨까? 아무래도 급진적인 내용보다는 보다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내용을 우선 노출시킬 수도 있다. 그것은 정확히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이슈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다. 구글의 CEO도 이러한 편향적 정보 노출 가능성에 대해서 청문회에서 추궁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순위’에 관심이 많고 때로는 열광한다. 내가 응원하는 축구 선수, 아이돌이 몇 위인지, 대선 후보가 몇 위인지, 제일 일하기 좋은 회사는 어디인지 등 말이다. 사실 이중에는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또한 객관화된 지표도 조작이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대선 후보의 인기도를 조사하는데, 지역과 연령층의 안배가 고르게 배포되지 않는다면 다른 후보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조작을 일삼는 사람들은 교묘하고 능숙하게 그리고 대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어떤 대상을 통제하거나 바꾸고 영향을 미친다.” - p161
얼마 전에 이슈가 된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당시 PD가 순위조작에 가담해서 고소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팬들의 투표로 공정하게 순위를 뽑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만약 방송국 PD가 어떤 아이돌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그 반대라면 팬들은 ‘편향확증성’에 빠질 수 있다. 당연히 투표 결과는 진정한 모습이나 실력과 다르게 편향된 결과를 보일 수 있다.
‘조작’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두려움에 호소하기’, ‘흑백 논리의 오류’, ‘선택적 진실’, ‘반복’, ‘권위에 호소하기’ 등이 있다. 우리는 언론이나 사회 지도층의 이러한 다양한 조작에 잘못된 인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을 우리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분명히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경우다.
이를 바로 ‘더빙-크루거 효과’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해서 무지하고, 정보에 대해서 무지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인지 편향에 따른 잘못된 우월성에 빠지기 쉽다” - p162
사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및 유럽 재정 문제의 발생원인 중 하나는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지나친 신뢰 때문이었다. 이들의 평가에 의존해서 채권을 마구잡이로 사들였기 때문에 나중에 버블이 터진 것이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는 지나치게 자국에 유리하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 투명성 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TI)에서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CPI)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결국 조사원의 조사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또한 ‘비서구형 부패’에 민감하고, 일부 서구형 부패에는 ‘정상적인 관행’이라는 방패를 씌워준다는 비평도 듣는다.
우리는 순위 속에 산다. 대학 순위에 관심이 않고, 더 나은 직장이 어디인지, 어느 동네의 부동산 가치가 높은 지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아무런 여과 없이 이러한 순위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 아무리 객관적인 지표라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 산출하느냐에 따라서 순위가 바뀔 수 있다. 즉, 언제든지 인간의 주관적 의견이 투영될 수 있다.
그렇다고 순위는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는 하되 맹신하면 안 된다. 늘 합리적인 질문과 의심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신뢰하되, 조심하라” - p329
이 책은 저자가 2년 동안 심혈을 들여서 쓴 책이다. 내용이 쉽게 읽히는 부분도 있고,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다. ‘랭킹’이라는 것의 실체와 이면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이는 객관적 지표가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