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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멈추다 - 초록빛 힐링의 섬
이현구 지음 / 모요사 / 2019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여행 에세이다. 요새는 여행안내서보다는 이렇게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쓴 책들이 좋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는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와 《뉴질랜드에선 모든 게 쉬워》이다.
특히 그린란드와 아일랜드의 공통점은 유럽 국가라는 것이고, 대중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장소라는 점이다. 예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고객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도시가 참 아담하고, 깨끗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또한 더블린 공대의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 곳을 떠나기 전에 클링턴이 방문했다는 펍도 들렀다. 아주 오래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일랜드 펍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잊고 지내던 아일랜드를 책으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전에 아일랜드 출신의 아이리시맨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술도 참 좋아하고, 성격도 활달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들과의 공통점도 보였다.
이들 아이리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바이킹인 켈트족의 후예라고 한다. 기원전 900년 ~ 기원전 150년 사이에 켈트족들이 건너가서 아일랜드 문화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이들 원주민이 쓰던 언어가 현재는 아이리시 게일어로 발전했다.
아마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들은 바이킹의 후예로 불리고, 영국의 지배에 대항해서 길고긴 독립 운동을 벌였다. 1919년 1월 21일 아일랜드 임시정부(참고로 상해 임시정부도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를 세우고 영국에 독립 전쟁을 선포했다.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지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지만 그래도 책의 앞부분에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있어서 관심이 갔다. 특히 요새 바이킹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책의 저자는 언론사에서 일을 하다가 새로운 충전을 위해서 아일랜드에서 공부를 하다가 지금의 남편 존을 만났다. 저자는 그와의 추억과 삶을 담담하게 기술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직접 경험한 장소와 문화를 풀어썼다. 역시 칼럼을 많이 쓴 작가답게 글을 쓰는 실력이 뛰어나고, 문장 표현에 세밀함과 섬세함이 느껴진다.
책에는 아일랜드와 수도인 더블린의 지도가 있어서 관광 안내서의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아일랜드에 살면서 경험한 것을 함께 녹여냈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갔다. 더군다나 스토리(사연)가 있는 장소는 유독 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존이 이모로부터 물려받은 아이리시 펍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남편 존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헤어져 살면서 거동이 불편한 이모와 함께 아이리시 펍에서 일하고 생활했다. 그러다가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서 요리사로 선원으로 떠돌다가 다시 이모가 물려준 작은 펍인 ‘릴리 피네건’을 경영했다. 이미 2백 년이 넘은 펍 답게 이 펍은 그 지역에서 누구나 아는 펍이고, 아일랜드에서 꼭 가봐야할 펍 20개 중의 하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아무래도 누구보다 맥주를 사랑하는 나이기에 무엇보다 아이리시 펍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저자는 이이리시 펍이 구멍가게 보다 많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골목 여기저기에 펍이 있다. 정말 아이리시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 낭만이 있다고 하니 더 상상력이 발휘된다.
언젠가 꼭 가고야 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오래된 펍인 브레이즌 헤드는 무려 1198년에 펍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어떻게 맥주를 마시고, 생활했는지도 궁금해졌다. 또한 가장 작은 펍은 도슨 라운지인데, 길을 가다가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큰 곳보다는 아담한 선술집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끌리는 곳이다.
아일랜드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고 한다. 햇빛이 비치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옷을 철저히 준비해야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는 아일랜드의 트레이드마크다. 오죽하면 국민 주식인 감자도 (저자의 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라고 한다. 정말 그 감자 맛도 궁금해진다. 또한 한적하고 여유 있는 삶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때쯤 쿨리에 도착해 한 로컬 펍에서 파슬파슬한 쿨리 감자와 양상추 샐러드를 먹고 바닷가 근처를 느리게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 p98
세인트 패트릭 데이 때는 거리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다. 한 마디로 축제의 도가니다. 이 때가 3월 17일이라고 한다. 특이한 점은 패트릭 선교사는 웨일스 출신인데, 원래 노예로 끌려왔다가, 선교사가 되어서 아일랜드에 기독교 복음을 전파했다. 특히 초록색의 의미는 독립 전쟁과 관련이 있다. 1641년 북아일랜드에서 독립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들의 사령관이 초록색 깃발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독립 운동을 벌였지만 수백 년간 독립을 위해 투쟁한 아이리시 사람들의 집념과 투지, 그리고 자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리시 음악을 들었다. 사실 아이리시 전통 음악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삽입곡으로 쓰여서 귀에 익숙하다. 또한 아이리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악인 아이리시 음악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한다. 아이리시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우리도 잊고 지내는 ‘흥’과 ‘한’의 문화를 이들은 잘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또 가고 싶은 장소가 생겼다. 그린란드는 너무 추울 것 같았고, 뉴질랜드를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아일랜드에도 가보고 싶다. 그냥 여행이 아니라 몇 개월 정도 머물면서 현지의 문화를 느끼고 거리를 거닐고, 단골 펍을 만들고 싶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스토리, 그리고 아일랜드의 생활과 경험, 문화와 역사 등이 잘 어우러졌다. 한편의 따뜻한 여행 에세이를 읽은 기분이다. 오늘은 아이리시 음악을 계속 들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