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신해철! - 그에 대한 소박한 앤솔러지
지승호 지음 / 목선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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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지승호는 유명한 전문 인터뷰어다. 당대의 ‘문제적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펴낸 책만 50권이 넘는다. 그가 쓴《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라는 책도 인상 깊게 읽었다. 


신해철의 처음이자 마지막 저서인《신해철의 쾌변독서》도 지승호 작가와 함께 했다. 


지 작가는 신해철과 두 번째 작품을 같이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 1부는 신해철과의 가상 인터뷰를 다룬다. 다소 특이한 구성인데, 신해철이 직접 얘기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사상과 목소리를 잘 담았다.


2부는 키워드로 다시 만나는 마왕, 3부는 내가 기억하고 추억하는 신해철에 대한 이야기, 4부는 2002년 두 번의 노무현 당선 직전, 그리고 직후를 다룬다.


신해철하면 항상 떠오르는 노래. 〈그대에게〉가 바로 그것이다. 


1988년 MBC 대학 가요제에서 ‘무한궤도’라는 밴드로〈그대에게〉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명문대생으로 이루어진 밴드로 더 주목을 받았는데 이들 중 신해철, 조형곤(베이스) 등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아주 강했다. 결국 몇 명은 떠나고 나머지는 음악에 일생을 바쳤다. 나중에 조형곤과 정석원, 장호일이 만든 015B 밴드도 무(0)한(1)궤도(Orbit)의 이름을 따서 재미있게 만든 것이다. 


〈그대에게〉라는 노래는 처음 시작할 때 전주가 너무 화려하고 멋있다. 이 전주를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멜로디언으로 이불에서 만들었다니. 정말 천재다.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 현장의 심사위원(조용필 등)과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곡을 화려하게 하면서 변화무쌍하게 만들자고 했다. 한마디로 ‘전진돌격대형’으로 시작부터 돌격이었고, 그 작전이 적중했다. 방송작가 지현주는 이 노래가 가히 혁명이었다고 평했다. 


사실 이 노래는 가수에게 ‘약’이자 ‘독’이 되었다. 

음악 평론가 강현이 2002년경 넥스트 공연 기획을 맡으면서 이 곡이 피날네를 장식하는 곡이었는데, 이 곡을 오프닝 곡으로 사용하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결국 신해철도 이 곡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이 곡이 그에게 큰 영광을 가져다주었음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덕분에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음악가로서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신해철은 그룹사운드를 지향했다. 

비록 솔로 활동(약 2년)도 했지만 그 기간은 그룹 활동 때보다 훨씬 짧았다. 그는 천생 록밴드의 리더였다. 그의 이러한 리더 성향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됐다. 선생님의 절대적인 신뢰로 아이들에 대한 체벌권까지 넘겨받았다. 그래도 그는 아이들에게 선생님한테는 맞게 하지 않겠다는 논리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역시 논리 싸움에서는 고수다)


그는 〈고스트 스테이션〉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솔직하면서 진솔한 상담을 해 주었다. 마치 친구나 동네 형, 오빠가 된 것처럼 대화를 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잘 들어주기’였다. 그리고 상대방의 잘잘못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다. 물론 가끔 상대방이 욕을 먹거나 꾸짖어 주기를 원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거나 질펀한 욕을 해줬다고 한다. 


그는 인디밴드에 대한 사랑이 컸는데, 이들을 종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하고, 사석에서는 밥도 사주면서 잘 챙겼다고 한다. 그는 한국 음악이 퇴보했다고 안타까워했는데, 첫째는 불법다운 로드와 둘째는 라디오에서 팝송을 잘 틀지 않으면서부터라고 했다.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가요 위주로 듣다보면 음악에 대한 폭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아이돌 음악을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라 밴드 음악이나 다른 음악의 장르가 더 성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중도 그의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불법다운 로드에 대해서 강렬하게 비판했고, 나중에 이를 대비해서 저가로 음악을 만드는 방법도 강구했다. 실제로 그의 앨범 중에는 300만 원 홈레코딩 장비로 제작한 것도 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사랑이 넘쳤고, 음악하는 후배들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줬다. 무엇보다 그가 대단한 점은 끊임없이 멈추지 않는 실험 정신이었다. 


“부정적인 네거티브의 공세로 ‘이 음악은 안 된다. 얘네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저는 수비라고 보거든요. 대안을 찾아내고 뭔가 판을 바꾸기 위해서 근본적인 개혁을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훨씬 적극적인 공격이라고 봅니다.” - p125


그는 음악가이면서 사상가였다. 

잘못된 사회의 부조리를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100분 토론회나 1인 시위 등을 통해서 몸으로 실천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으로서는 자살 행위와 다름없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믿음’을 지지했고,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실천한 삶을 살았다.


“그는 스스로를 개량된 경상도, 개량된 마초라고 말했다. (중략) 언론 기사와 토그쇼에 나와서 ‘마누라 손에 물을 안 묻히게 한다’고 한 말 등은, 카리스마를 가지 아티스트 신해철이 아니라 애처가 신해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 p69


그는 진정한 음악의 마왕이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크고, 자신이 먼저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중요시 했다. 평소에는 소프트하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열변을 토했다. 문화 혁명가이면서 동네 형, 오빠였던 신해철. 


앞으로 음악에 대한 열정,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열망, 그리고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뮤지션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신해철의 곡들을 다시 들을 수밖에 없다. 정식으로 그의 음악들을 다운받아서 하나씩 들어보고, 가사를 음미해 본다. 왠지 마음이 찡하다. 


의료사고로 인한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 그나마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은 그 공백을 메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공백을 완전히 메울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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