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자, 이상훈 - 18.44미터의 약속
김태훈 지음 / 소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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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8.44미터는 홈플레이트에서 투수가 던지는 마운드까지의 거리다. 그 18.44미터에서 온갖 희로애락이 모두 발생한다. 누군가는 거기에서 성공하고, 거기에서 실패한다. 


하지만 투수 이상훈은 단순히 마운드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지 않는다.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야구인의 삶을 살려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다. 따라서 단순히 이해타산을 떠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선발 20층, 최다승, 최고 방어율, 최고 승률 같은 타이틀은 상훈에게 크게 의미가 없었다. 팀이 승리하는 게 중요했고, 그 이전에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글쓴이 김태훈은 도시와 문화, 그리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스토리텔링 관련 대학 강의와 글쓰기, 라디오 방송을 꾸준히 하고 있다. 원래 MBC 청룡 팬이었다가 이후 LG 트윈스 팬, 그리고 현재는 고향 팀인 NC 다이노스를 응원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이상훈 투수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글을 정리했다. 


이 책의 시작은 수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시작한다. 왜 그가 야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 다음부터 그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와 이상훈 투수의 진정성이 더해져서 이 책의 감동을 더 높여준다.


이상훈 투수는 일반적인 야구 선수의 루트를 따르지 않았다. 보통 야구로 유명한 초등학교부터 야구 선수를 시작하고, 그것이 결국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이어지게 되어있다. 지금은 좀 나아졌겠지만 예전에는 선후배 간의 군기도 심했고, 욕설, 구타 등도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상훈 투수는 처음에 취미로 감독을 시작한 조상진 감독 밑에서 즐겁게 야구를 시작했다. 물론 열심히 훈련을 한 덕분에 리틀 야구 대회에서 조 감독이 이끄는 신길화랑이라는 리틀 야구단이 미쉐린기 리틀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이 후 야구를 전문으로 하는 강남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처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사람이 임수혁 선수였다. 나중에 그를 서울고등학교, 고려대학교로 이끌어준 1년 선배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이상훈 투수를 위해서 임수혁 선수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도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힘든 삶을 살게 된 이상훈 선수는 대학교에 입학 후 뒤늦게 사춘기가 와서 심한 방황을 했다. 머물 집이 마땅치 않아서 합숙소에 살았는데, 종종 ‘빠빠용’처럼 탈출했다고 한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해변에서 바다만 바라보다가 해변가에서 잠들고 부랑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코치, 선수들에게 이끌려서 돌아왔다. 


그래도 야구 경기는 빠지지 않고 뛰었는데, 오랜 방황이 끝난 후 3학년 2학기, 4학년 때 빼어난 성적을 거두어서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다. 


왼손 광속구 투수는 결코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몸값은 더 올라갔다. 프로에 입단해서도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했다. 그의 성공에는 끊임없는 노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를 노트에 기록했다. 


운동 스케줄은 그대로 노트에 기록됐다. 상훈은 단거리를 몇 번 뛰었는지, 중장거리를 몇 번 뛰었는지, 상체 웨이트 했는지 하체 웨이트를 했는지, 튜빙은 코스별로 몇 회나 실천했는지 등을 빼곡하게 기록했다.” 


심지어 시합이 끝나고도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 머릿속을 게임 내용을 복기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일종의 의식’이었고, ‘반성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치열한 노력 끝에 그는 프로 첫 해에 9승을 거두고 그 다음해에 2년차 징크스를 무색하게 할 만큼 18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이어서 1995년에 20승까지 거두게 된다. 20대 중반에 이미 세상을 다 가진 것이다. 


하지만 1996년에 LG 구단은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이광환 감독을 전격 경질시키면서 이상훈 투수는 구단에 큰 실망을 느껴서 이 후부터 야구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했다. 비록 초기에는 무산됐지만 선수협을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정상의 자리에 섰지만 이상훈 투수는 결코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미국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돈을 얼마나 더 받든, 승수를 얼마나 더 올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야구를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FA 제도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현역 선수가 미국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구단이 시키는 대로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임대되어서 활약하게 된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특유의 뚝심과 노력으로 그는 주니치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선동렬 투수, 이종렬 선수와 같이 기여했다. 당연히 선동렬 투수의 뒤를 맡아서 마무리로 낙점되었지만 그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의 염원대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게 되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마이너리그에서 주로 머물렀지만 그에게는 성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야구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순수하게 야구를 사랑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팀 내에서 큰 형님 같은 존재가 됐다.


“어느새 팀원들에게 상훈은 큰 형님 같은 존재가 됐다. 투수는 물론이고 타자들도 야구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을 끌어안고 상훈을 찾았다. 상훈은 귀담아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줬다. 


그가 한국에 돌아온 후 2002년 간신히 4위에 오른 LG 트윈스를 한국 시리즈 6차전까지 끌고 간 스토리는 전설과 같았다. 비록 6차전 9회 말 이승엽 선수에게 동점 3점 홈런, 이후 바뀐 투수가 마해영 타자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우승은 못했지만, 오히려 우승을 못해서 더 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이상훈 투수는 자신을 어둠 속에서 빛으로 끌어준 기타를 치고 연습하고 앨범도 냈다. 락음악이 그다지 인기는 좋지 않았지만 그는 락음악을 사랑했다. 아마추어 여자 야구팀을 무보수로 맡아서 우승으로 이끌었고, 두산베어스 2군 코치를 맡아서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움을 줬다. 


그에게 있어서 야구는 그의 분신이고, 철학이다. 야구의 기술은 노력을 통해서 극복했지만, 무엇보다 야구를 대하는 ‘태도’를 중요시 했다. 어떤 자세로 타자를 대하고, 위기를 극복하는지 ‘정신’을 중요시했다. 그의 인생 자체가 그랬다. 그는 야생마이고, 삼손이고, 마음이 따뜻한 형님이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앞으로도 이상훈 투수의 행보가 기대된다. 


이 책은 야구팬들이 읽어도 재미있지만 누구나 읽어도 감동을 받고, 교훈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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