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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제국의 미래 - 삼성전자, 인텔 그리고 새로운 승자들이 온다
정인성 지음 / 이레미디어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대국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전 세계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70% 수준에 육박할 정도다. 이 책은 비단 메모리뿐만 아니라 인텔, 엔비디아 등을 포함한 비메모리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하는 파운드리 업체도 다룬다.
책의 내용이 광범위한데다가 기술적인 내용이 많아서 사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집어들기 힘든 책이다. 그래도 반도체 시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SK하이닉스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반도체 개발 검증 업무를 담당 중이다.
사실 현직에 있으면 관련 분야를 쓰기는 힘들었을 텐데, 저자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이 책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현직에 있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내용은 최소화하고, 다른 기업과 환경에 대한 위주로 기술한 것 같다.
책은 총 2개 파트로 이루어져있고,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는 반도체 제국을 다루는데, 삼성전자, 인텔, 팹리스와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파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승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기존의 업체들뿐만 아니라, ARM, 엔비디아, TSMC, 구글 등의 업체를 다룬다. 마지막으로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저자의 의견을 피력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승자의 법칙을 살펴보고, ‘온고지신’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과거에 반도체 역사가 어땠는지를 알아야 하고, 이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사실 반도체는 2018년 우리나라 단일 수출 품목으로는 최초로 1,000억 달러의 기록을 세웠고, 수출 금액 중 비중도 무려 20%를 넘는다. 반도체를 통해서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나라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이들 업체들이 지불하는 세금도 막대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도체라는 사업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기기와 달리 반도체는 기기 안에 내장되기 때문에 이 조그마한 칩이 과연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 나의 휴대폰이나 PC, TV 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최근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에 따른 반도체 주요 재료의 수출 제한으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어쨌든 이러한 반도체의 중요한 역할과 영향성을 알리고자 저자는 이 책을 저술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라는 제품을 이해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특히 휘발성 메모리인 디램 반도체는 혹독한 게임이 법칙이 적용됐다.
20개가 넘던 제조사들이 이 사업을 포기하고, 현재는 주요 3개 업체만 남아서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기술력’이 중요한 제조업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체가 들어오기가 힘든,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이다. 또한 원가에서 설비투자가 차지하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기술’이 받쳐줘도 충분한 자본이 있지 않으면 진입할 수 없는 사업이다.
“기술력의 영향력과 고정비용이 크다는 반도체 시장의 두 가지 특징은 모든 상품이 균질하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특징과 합쳐지면 매우 살벌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 p39
초기 디램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던 일본 업체들은 제품의 품질에 집중했는데, 전체 시장에서 품질이 덜 중요한 PC 사업이 성장하면서, 한국 업체들은 다른 전략을 펼쳤다. 즉, 품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원가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대량 생산한 것이다.
또한 메모리 반도체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300mm 웨이퍼 전환은 막대한 투자금이 드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삼성전자는 2001년 10월, 300mm 웨이퍼 기반의 120나노 디램 칩을 양산했다. 더군다나 2001년 디램 시장은 수요 급감으로 상황이 안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CEO의 과감한 결정으로 일본 업체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었다.
낸드 역시도 삼성전자는 후발 주자여서 도시바로부터 핵심 기술을 라이센싱했으나, 이어서 애플과 협력해서 아이파드 나노향으로 막대한 양의 낸드 칩을 공급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다. 시장의 큰 트렌드를 잘 파악해서 베팅을 한 결과다.
시장의 착한 독재자로 불리는 인텔도 PC의 성장과 함께 급성장했다.
비록 AMD의 견제로 서버 시장에서 일부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잘 극복했다.
“인텔은 단기적으로 기술 개발비를 절약하는 등의 방식으로 밸류 체인의 부가가치를 혼자 흡수하는 소탐대실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계 성장을 늘 염두에 두었다.” - p155
기술의 어려움, 그리고 천문학적인 투자비 등으로 이 둘을 모두 해결하는 종합 반도체 업체(IDM)를 제외하고, 설계 위주의 팹리스 업체와 생산에만 주력하는 파운드리 업체의 성장도 주목해야 한다. 다양한 IT 기기의 발달과 더불어 보다 많은 종류의 칩이 필요하고, 이러한 다품종, 소량화를 대규모의 IDM 업체들이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틈새시장을 팹리스 업체와 파운드리 업체를 노리고 들어오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는 ARM과 TSMC다.
중국은 2017년 기준 세계 반도체 수입의 30%를 차지했다.
이들은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여 반도체 굴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즉, 막대한 수입량을 내부 생산분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술의 수준이 어떻든 어떤 식으로든지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2019년 7월, 한국에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재의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이렇게 목이 조이는 상황에서 삼성과 하이닉스는 대체물질을 실험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면서 난국을 타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저자는 결국 승자의 룰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뛰어난 회사들은 거대한 IT 생태계를 상생하게 만드는 회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는 치열하게 경쟁자들을 밀어내가 위해 기술을 개발하지만, 다른 밸류 체인에 속한 혁신가들에게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 p355
따라서 치열한 반도체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나의 기술과 원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그마한 변화에도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시장에서 영원한 승자란 있을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4차 혁명을 바라보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