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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언어 - 더없이 꼼꼼하고 너무나 사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어 500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도젠 히로코 엮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도대체 이게 무슨 소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이질감을 느끼고,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렇게 책장 안에 넣어두었다가 6개월 정도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조금씩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담담한 필체, 약간의 허무주의, 소소한 일상, 반복되는 행위들, 그리고 재즈. 이러한 그만의 단어, 생각, 습관 등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990년대 초에 그의 작품을 접하고, 이제 2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하루키라는 작가가 대단한 것은 자신만의 색깔과 세계관을 형성한 것뿐만 아니라, 그의 꾸준함에 있다.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한다. 이러한 삶이 쳇바퀴처럼 돌지만 그는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늘 반복하면서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삶에는 ‘마라톤’이 있다.
“계속 하는 것 – 리듬을 끊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기만 하면 그 뒤로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플라이휠이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기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해야 하는 것에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218
물론 그는 여행도 다니고, 에세이도 쓴다. 한 마디로 자신만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면서, 가끔씩 변화를 준다. 내가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인생이다. 그는 집안 살림도 꽤 익숙하다.
“실제로 주부로 생활한 시절이 있었고, 아내가 출근한 후에 청소, 세탁, 장보기, 요리를 하며 아내의 귀가를 기다렸다고 한다. (중략) 그런 일상의 무료함이야말로 상상을 비약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후에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과의 대조를 더욱 두드러지게 해줬을 것이다.” - p33
어쩌면 지금 나의 삶과 비슷한 삶을 그는 살았고, 나도 요새 일상의 무료함을 조금씩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간다. 특히 하루키에게 있어서 다림질을 하는 행위는 하나의 ‘정화’로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한다. 셔츠를 다리는 과정도 무려 12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재즈는 인생철학 자체였다. 재즈는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서 ‘즉흥적인 사고방식’을 의미했다. 하루키 문체가 바로 재즈 자체라고 한다. 이 부분도 내가 재즈의 삶을 좋아하는 이유다. 재즈의 즉흥성과 리듬감은 글을 쓸 때도 영감을 준다. 나도 글을 쓸 때, 즉흥성을 중요시하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하지만 재즈라는 것이 무한정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재즈다.
하루키 작가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리듬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그리고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어주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 p213
그의 작품에 재즈곡의 제목이 쓰인 것도 그의 재즈에 대한, 아닌 재즈스러운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서 《중국행 슬로 보트》(소니 롤린스),《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냇 킹 콜)등의 제목이 재즈의 제목에서 왔다.
그는 1949년 1월 12일, 교토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이 모두 국어 교사였다.
그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적에 일본 문학을 주로 공부시켰는데,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그는 오히려 외국 문학에 탐독했다.
1968년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 연극과에 진학 후 같은과 동급생인 요코 씨와 학생 신분으로 결혼 후 1974년, 스물다섯 살에 고쿠분지에 재즈 카페 ‘피터캣’을 개업했다. 이렇게 다소 특이한 이력을 쌓은 후 1978년, 진구 구장에서 야쿠르트 대 히로시마 야구 시합을 보다가 돌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매일 가게를 닫은 후, 부엌 식탁에서 한 시간씩 사 개월 동안 데뷔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집필했다.
이 후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그는 ‘판타지’와 ‘리얼리즘’이 녹아 있다고 한다.
그는 단편과 장편 소설을 두루 집필했는데, 그의 소설 중 대표적인 판타지는 《해변의 카프카》, 《1Q84》이고, 리얼리즘은 《노르웨이의 숲》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등이다.
사실 나도 그의 판타지 소설 보다는 보다 리얼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리얼리즘 소설이 좀 더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중 특징은 동일한 모티브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쓰인다는 것인데, ‘나와 쥐’에 대한 이야기가《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댄스 댄스 댄스》의 4부작에서 묘사된다.
상실과 순례에 대한 테마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해변의 카프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반복된다.
하루키의 작품에는 고양이가 많이 등장하는데, 고양이에 이어서 바다짐승 강치도 종종 나온다. 고양이를 너무 사랑해서 그가 경영한 재즈 카페의 이름도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이름인 ‘피터 캣’에서 따왔다.
“나는 온 세상의 고양이를 거의 다 좋아하지만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 - p75
그의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아마 우리 모두가 ‘고독’과 ‘상실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외로운 삶을 피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는 그 삶 자체를 받아들이고, 즐기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묘한 동질감과 위로를 받게 된다. ‘이 세상에 외로운 사람은 나만 있는 게 아니구나’라고.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하루키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고, 가나다순으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 동물, 지역, 그리고 그와 연관된 사람들 등을 알 수 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의 책을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즈 음악과 함께라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