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읽어본 소설책이다.
왠지 모르게 겉표지에 이끌린 것인지도 모른다.
책 표지에 한 소녀가 보라색의 꽃을 들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눈빛에 슬픔이 가득하다.
스토리는 최대한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가 미아기 스가루는 고등학생 때부터 트위터, 익명 커뮤니티, 개인 웹사이트 등에 창작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3년 《스타팅 오버》로 정식 데뷔했다.
2019년 《너의 이야기》를 통해서 온라인 출신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의 주요 문학상인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탄탄한 구성과 복선, 그리고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 그리고 여운.
이것이 저자에 대한 설명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러한 느낌이 많이 든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의 느낌이 잘 사라지지 않는다.
총 12개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한 번의 호흡으로 읽어야 되는 책이다.
사실 손에 책을 들고 나면, 끝까지 읽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은 기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내용은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않겠지만, 큰 배경에 대해서 간략히 얘기하겠다.
때는 언젠가의 미래다.
인류의 기술이 진보해서 우리의 기억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을 ‘의억’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나노로봇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기억이다.
의억기공사는 ‘의억’을 만드는 직업이다.
의억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억을 갖고 있는 ‘나노로봇’은 분말가루 같은 것이어서 물과 함께 먹고 삼키면 된다.
그린그린은 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
레테는 특정시기의 기억을 제거해주는 나노로봇,
메멘토는 삭제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나노로봇,
엔젤은 가공의 자녀를 제공하는 나노로봇,
허니문은 가공의 결혼 생활을 제공하는 나노로봇이다.
처음에 이 용어 설명을 듣고 나서 다소 황당한, 특유의 일본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노 로봇’은 이 소설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나노 로봇이 미래에 가능할지, 불가능할지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이 책은 ‘사랑’과 ‘기억’에 대한 책이다.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가족간의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다.
지독히도 외롭고 고독을 즐기거나, 또는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과거 기억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예를 들어서, 나의 학창 시절이 끔찍했다거나, 결혼 생활이 잘 못 됐다거나, 안 좋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그 기억을 가공의 기억(물론 나는 눈치 못 채겠지만)으로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기억을 아예 지워버릴 수도 있다.
만약, 내가 한 번도 연애를 못했거나, 결혼을 안 한 사람도, ‘허니문’을 통해서 나의 결혼생활을 만들 수 있다. 그 기억에는 멋진 남편, 아내가 있을 것이다. (물론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자녀들도 만들 수 있다.
지금은 당장 진실이 중요하고, ‘진짜 기억’이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내가 못 누린 청춘에 대한 기억을 만들거나, 풋풋한 첫사랑을 경험한다면(상대는 완벽한 이상형이다)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물론 이 책의 주제는 이러한 기억에 대한 질문 보다는 외로움, 고독,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더 강하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의 기억은 기억이다.
과거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 기억이 소중한 또는 소중하지 않던 간에 우리 뇌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 기억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지만, 불행하게 만들 때가 더 많이 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존재는 참 오묘하고 신기하다.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우리는 계속 되새김하면서, 그 기억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경험이더라도 나의 기억과 상대방의 기억이 다른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가 믿는 기억 중에는 진짜 기억이 아니라 ‘의억’이 있고, 기억을 지워주는 ‘레테’라는 약을 먹은 것처럼 까맣게 기억이 안 나는 것들도 있다.
이 책은 ‘사랑’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믿는 기억은 정말 우리의 기억일까?
우리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