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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역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ㅣ 누구나 교양 시리즈 3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장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2월
평점 :
이 책의 제목과 부제가 무겁게 다가온다.
정말로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게 수많은 희생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인간의 본성과 아주 오래된 신화로부터 그 근본을 찾아간다.
결국 인간은 서로의 종족을 죽이고,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본능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그가 언급한 침팬지와 꼬리감는 원숭이의 ‘싸움’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인간과 더불어 가장 지능이 높은 침팬지가 체계적으로 동족을 섬멸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전쟁의 진짜 원인은 ‘지능’이라고 한다.
어쩌면 인간의 발달된 지능은 더욱 더 많은 욕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연구하는 것인 줄도 모른다.
반면, 동물들도 영역 다툼을 위해서 싸우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자신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다. 그런데, 인간은 생존뿐만 아니라, 소위 ‘대의명분’이라는 명목으로 전쟁을 벌인다.
저자도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전쟁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파괴 행위다.” - p6
이렇게 전쟁의 무상함을 강조하는 저자는 다름이 아닌 독일 사람이다. 그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이고, 독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유태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에 몰아넣은 전범 국가인 독일 사람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나치즘’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독일의 나치 시절처럼 인간 사회의 도덕적 가치가 무너지면 대량 학살을 막을 길이 없다.” - p19
이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인간은 폭력을 좋아하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정말 평화로운 미래가 올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걱정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는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전쟁에 대한 ‘자유권’이 부여되어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전쟁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부족이나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프로이센의 왕인 프리드리히 2세는 자국에 닥칠 위험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미리 벌였다고 했으나 이 또한 자국 방어권을 과도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 시대 때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경우도 명나라로부터 ‘해방’을 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결국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전쟁의 명분을 만들었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임진왜란에 대한 얘기가 없다.)
반면, 저자는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를 높게 평가했다. 손자는 결국 최고의 전술을 평화로 꼽았기 때문이다. 손자는 ‘적군을 온전하게 두고 이기는 것이 최상책이고, 적군을 격파하여 이기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종교’도 전쟁을 유발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거의 모든 전쟁은 ‘성전’으로 해석되었다. 지금도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테러를 성전이라고 부르짖고 있다.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종교의 사제들은 전사들의 무기에 축복을 내려 주었고, 지금도 이러한 전통이 이어진다. 심지어 나치군도 ‘신이 우리와 함께 하도다’라는 글귀가 버클에 새겨져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종교와 전쟁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북아에서 종교 전쟁이 서양보다 덜 했던 것은 불교와 유교에서는 신이 없고, 힌두교는 다신교를 섬겼기 때문에, 타 종교의 신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 흥미롭다.
“십자군은 불만이 가득한 귀족 기사와 한몫 잡아 보려는 모리배가 한데 섞인 불손한 군대였다. 때문에 십자군이 지나간 지역에서는 약탈과 살인 등의 만행이 끊이지 않았다.” - p93
이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기사들이 장자 상속의 전통 때문에 땅을 물려받지 못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 <킹덤 오브 헤븐>도 이렇게 십자군 전쟁에 대한 모순을 지적한다. 십자군 중에는 정의감에 불탄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외에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전쟁을 벌이는 전쟁광들도 다수 있었다. 물론 주인공은 이러한 십자군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그곳을 떠나게 된다.
그는 현대에서도 이러한 십자군 전쟁이 벌어진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게 현대 문명의 십자군 이념에 휩싸였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이 부분은 나도 공감이 된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행위는 당연히 근절되어야 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이러한 폭력 예방을 마치 십자군 전쟁처럼 미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가혹한 전쟁은 ‘식민지 전쟁’이다. 저자는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이 당시 1,500년경 아메리카 대륙에 무려 8,000만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유럽인은 흔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주민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50년 후에는 8,000만 명이 1,000만 명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행위가 벌어진 것이었다.
1차 세계 대전도 마찬가지다. 무려 7,000만 명의 병사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하루 동안 최고 10만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은 전투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전쟁은 갈수록 참혹해져갔다. 희생자의 50% 이상이 대포에 의해서 희생되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2차 세계 대전의 폐해를 언급하고, 독일의 유대인 학살(총 600만 명의 유럽 유대인이 희생되었다.)을 비판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가 쓴 글이기 때문에 왠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4제곱킬로미터 면적의 바르샤바 게토에 35만 명의 유대인들을 말 그대로 ‘처넣었다.’” - p231
저자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면서 전쟁의 원인, 성질, 그리고 역사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이렇게 세계사를 꿰뚫어보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고, 또한 이러한 방대한 내용을 비교적 쉽게 설명해서 역사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수많은 그림과 사진,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는 더욱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따라서 저자가 주장하는 이러한 말에 더욱 더 공감하게 된다.
“독일이 동유럽에서 자행한 만행의 정도가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생각한다면 독일이 당한 피해 정도는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 p239
다시 한 번 평화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