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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ㅣ 누구나 교양 시리즈 1
만프레트 마이 지음, 김태환 옮김 / 이화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세계사를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독일 사람으로 뒤늦게 책과 교육에 관심을 갖고 교사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책들은 거의 모두 ‘필독’도서가 되었다. 무려 1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책이 정말 이해하기 쉽고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가 되었다. 저자의 독자에 대한 배려심이 보인다. 또한 이 책은 청소년 들을 대상으로 쓰인 것 같지만 어른들이 읽기에도 아주 좋다. 오히려 어려운 역사 책보다 이렇게 쉬운 책을 읽으면서 점차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목차는 첫 번째로 최초의 인간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56번째는 앞으로의 기후 변화를 다룬다. 각 목차마다 분량도 적당하고 내용이 쉬운 편이어서 한, 두 시간이면 누구나 세계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고등학생 때 세계사 수업도 재미있었지만 이렇게 내가 찾아서 읽으니 더욱 재미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부분도 새삼 알게 된다. 인류가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청동기, 그리고 수메르 문명이 남긴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서, 또한 그들이 남긴 12진 법과 60진법. 이렇게 발달한 문명이 기원전 2000년경에 중동 지역에 퍼져 있다가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진다. 정말 미스터리한 이야기다. 혹시 이들은 외계인이 아니었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나일강이 평균 365일마다 범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일 년을 365일로 정한일, 그리고 누구나 사용하는 달력을 무려 기원전 3000년경에서 이집트인들이 발명했다는 것도 새삼 신기하게 생각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기원전 2500년경 피라미드를 짓는 것만 23년이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들은 신과 같은 파라오가 내세에도 이들을 통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오랜 시간을 견딘 것이다.
이 외에도 인더스 강의 고대 문명은 더욱 놀랍다. 기원전 3000~2000년경에 형성된 문명인데, 집안에 욕실과 화장실이 있는 집도 있고, 심지어 하수도, 수도관, 수영장도 있었다. 두 도시의 인구는 무려 4만 명에 육박했다. 그런데 이들도 기원전 1500년경 몰락하는데 아마도 이들이 나무를 많이 사용하면서 무분별한 벌채를 하고, 결국 홍수로 인해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난 것으로 추측한다. 마치 현대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자연을 훼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아테네의 민주주의, 그리고 로마의 공화정은 현대 민주주의 시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당시의 정치 참여는 일부 부유층, 기득권들의 참여로 인한 제한적인 참여 정치라고 할 수 있지만 기원전 450년경 열두 개의 동판에 로마법이 새겨져 광장에 공시된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아시아에서는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절대 왕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국은 기원전 221년에 중국의 진시황제가 중국 전역을 통일하면서 ‘황제’라는 지위가 처음으로 생겼다.
반면 로마에서는 독재를 인정하지 않고, 비록 기득권들 위주이지만 원로회에서 서로를 견제했다. 또한 로마는 기원전 270년경에 인구 약 300만 명의 이탈리아를 대부분 통치하지만 토시들의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느슨한 점령’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중국이나 로마나 평민들의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27년에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가 패권을 잡고, 그에게 군의 최고 사령관이라는 의미로 ‘임페라토르Imperator’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그를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라는 이름도 부여받았다. 이렇게 아우구스투스는 황제가 되어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
이는 진시황이 황제가 된 후 약 200년 뒤에 발생한 일이다. 그리고 약 200년간의 평화로운 시대를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라고 불린다. 하지만 로마도 결국 동로마, 서로마 제국으로 나누어지고, 서로마 제국은 다시 분열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동로마 제국은 비잔틴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이후 1,000년간 지속되면서 동, 서의 문화를 융합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봉건 시대가 되면서 지주들의 권력을 세졌지만 농노들의 삶은 비참했다. “농부는 황소 애용, 다만 뿔이 없다 내.”라는 말로 농민들은 조롱당했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어릴 적부터 일을 해야 했고, 아들은 열여덟 살, 딸들은 열세 살에 결혼하고, 태어난 아이들도 생존 확률이 30% 미만이었다고 한다.
서기 1000년의 세계도 흥미롭다. 당시 세계의 인구는 2억 6,000명이었고, 이중 6,500만 명이 중국인으로서 전체의 25%를 차지했다. 반면 인도는 무려 인구가 8,000만 명 있었다고 하니, 중국인보다 인구가 많았다. 중국은 960년에 송 왕조 창립 후 발달한 문명을 자랑하고 있었다. 비단, 도자기, 인쇄 기술, 주판, 화약 등 많은 신제품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동경하는 서구 문명의 중심인 서유럽은 가장 발전되지 않은 문명이었고, 미국이 자리한 아메리카에는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마야, 잉카, 아스텍 문명이 있었다.
당시 서유럽은 중세 시대의 암흑기에 있었다. 오히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 제국의 문화에 비하면 훨씬 뒤처지고 있었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1096년~1270년)을 통해서 원정대의 많은 사람들이(대부분 시골 출신) 발달된 이슬람 문명, 즉 다층 건물, 공공 목욕시설, 병원, 약국, 도서관, 학교 등을 접한다. 미개한 이교도들의 손아귀에서 성지를 해방시키려는 이 전쟁의 의도와 다르게 그리스도 교도는 발달된 문명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서유럽의 발전이 시작된 것은 공교롭게도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 신대륙의 발견을 거치면서 서구 문명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그 중심에 구텐베르크(1397~1468년)의 금속 인쇄술(1450년)이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1446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물론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유럽의 문명이 발달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남아메리카의 마야, 잉카 제국은 몰락하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노예로 끌려가는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게 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명나라(1368년~1644년) 때 잠시 서쪽에 관심을 두어 1431년에 명나라의 함대가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 도달 후 유럽까지 나아가려고 했으나 이후에 문을 걸어 잠갔다. 약 500년 동안 쇄국의 길을 가면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쇠퇴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때 지속적으로 무역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유럽인들의 욕심과 야심에 맞서 전쟁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좀 더 일찍 개방이 되면서 아시아의 문명이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럽에서는 17세기 후반,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성의 시대’가 된다. 많은 철학자와 계몽주의자가 자신의 학파를 만들고 이를 전파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이제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권력자나 종교에만 기대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라는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다. 물론 이후 인간들은 다시 한 번 이성을 잃고 욕심에 빠져들면서 전쟁을 일으킨다.
이 책을 통해서 ‘요순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시대를 알게 되었다. 그가 1740년에 국왕에 즉위하자, 철학자이고 시인인 그는 국민들에게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선포한다. 고문 제도를 없애고, 재판 절차에 국왕이 개입할 수 없도록 하고, 법정에서 모든 신분의 사람들이 똑같은 법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내가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누누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긴다. 또한 그는 군사적인 재능도 탁월하여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책에서 그는 ‘국민의 안녕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우리나라 역사를 찾아보니 1725년에 영조는 탕평책을 실시하여 골고루 인재를 등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역사의 암흑기는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천주교를 박해하고, 1805년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마지막 100년간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이때 서구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벌이고, 1783년 베르사유 평화 조약에 승인하면서 미합중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 자유 민주주의 기반이 된 미국 헌법은 1789년부터 시행된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 7월 14일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3주 후 8월 26일에 농노 제도는 폐지되고, 모든 프랑스 국민들은 평등하고 동등한 납세의 의무를 지게 된다. 7월 14일은 프랑스의 국경일이 되었다. 이후 나폴레옹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와서 유럽 전역을 개혁시키고, 1789년에는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발명하면서 유럽은 산업 혁명의 길로 들어선다. 물론 이후의 산업화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은 착취되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면서 또 다른 혁명의 불씨를 일으킨다. 1850년대는 서구에서는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고,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이 발발한다.
반면, 한반도에는 세도 정치가 시작된다. 다산 정약용의 실용주의가 반짝했지만 결국 세도 정치와 쇄국 정치에 이러한 변화는 묻히고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100년간의 차이가 이후 100년간(1900~2000년)의 차이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인 작가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해서 평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까지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어떻게 그런 일이 20세기에, 그것도 칸트, 레싱, 괴테, 실러를 낳은 문화 국가 독일에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독일인인 그에게도 이러한 집단 광기가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수천 명의 의식 있는 독일인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에 대항하였으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무려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집단 수용소에서 살해당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발생한다. 독일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알고 있지 않던 이러한 대학살은 여전히 독인에게 큰 무게를 지우고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에서 저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 중동 문제, 경제 위기, 심지어 기후에 대한 이슈도 다룬다. 최초의 인간부터 인류의 미래까지 광범위한 세계사를 340페이지에서 다룬다.
이 책은 세계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좀 더 크면 꼭 읽히고 싶은 ‘필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