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서 꺼낸 콘티
장원석 지음 / 아이스토리(ISTORY)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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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광고계에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연출한 CF만 200여 편이 넘는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위메프, 치킨매니아 등 아주 다양하다. 콘티는 콘티뉴이티의 약자다. 즉 촬영을 위한 각본 등 모든 사항을 기록한 것을 말한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나도 음악이나 글을 쓰는 창작 활동을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즉흥성, 그리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광고업계에서 어떤 식으로 콘티를 짜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광고 업계에 계신 분들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쓰레기통에서 버린 콘티 중에서 본인이 마음에 들어하는 콘티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이 책을 구성했다. 편안하게 광고를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면서 쉽게 읽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스코어》라는 책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창작활동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순수하게 음악가 위주의 음악이 있는가 하면, 대중을 위한 대중음악, 그리고 영화와 감독, 청중을 위한 영화 음악이 있다. 영화음악은 감독과 청중 위주이지만 작곡가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으면 베스트다.

그런데, 광고의 콘티는 철저히 광고주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광고주가 1순위고, 시청자는 그 다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의 고통이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내가 좋아하는 광고의 컨셉을 잡으면 편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광고주한테 끌려다니고, 내가 원하는 콘티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떤 창작 활동보다 힘들어 보인다.

저자는 콘티를 만들어야 하니, 일단 그림 솜씨가 좋다. 그리고 자신의 캐릭터도 아주 귀엽다. 그런데 귀여우면서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삶과 일에 찌든 모습이어서 더 현실성이 있다.

이 책은 가죽클리너, 갱년기약, 냉장고, 닭갈비, 변비약, 아웃도어, 영화관, 와이퍼 등 다양한 광고 중에서 채택이 안 된 콘티를 보여주고, 왜 채택이 안 되었지를 설명한다. 한 마디로 과거를 ‘복기’하는 괴로운 과정이다. 그래도 저자는 이를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변비 관련 광고는 ‘강남출장마사지’라는 다소 위험한 소재인대, ‘강남출장 장마사지’를 절묘하게 결합해서, 변비를 해결해준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광고를 제작하려고 할 때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일이 발생해서 도저히 광고화 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봐도 상당히 위험수위가 높은 광고이지만 아이디어가 빛난 콘티라고 생각한다.

아웃도어 관련된 콘티 중에서 ‘아직은 두렵지만 당신의 발자국에 내 도전을 맡깁니다.’라는 대사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콘셉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최적의 솔루션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와이퍼 관련 콘티도 너무 웃긴다. 야외 실습을 가는 날, 학생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선생은 “걱정하지 말아요. 와이퍼를 바꾸면 되요”라고 말했고, 학생들은 “또 와이프를 바꾼다구요?” 라고 묻는다. 약간 아재개그같은 느낌은 나지만 그래도 나름대도 재미있는 콘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콘티가 완성되어서 광고로 제작되기 전에 ‘펑크’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이를 달래기 위해서 저자는 술을 사 준다고 한다.

“또 취소되었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힘이 빠진다. 스케줄이 취소도니 스탭들은 나를 원망하고 나는 그들을 달래느라 술을 마신다. 언제나 젊음인 주 알았는데 이때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써도 편집자에게 어필하지 못하거나 또는 책이 출판되었을 때 독자들에게 외면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 동안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좌절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할 줄 아는 것이 글쓰기인데? 저자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좌절해도, 그리고 콘티를 쓰레기통에 버려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 중에서 살아나는 콘티가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많이 할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아이디어들이 항상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은 아니고, 어떤 순간에는 너무나 쉽게 일사천리로 와선이 되고, 촬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꾸준히 행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해학적인 장면에는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콘티 작가님, CF 감독님들이 더욱 대단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나도 나중에 창작의 고통을 해학적으로 풀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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