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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오리지널 인터뷰집
맷 슈레이더 엮음, 백지선 옮김 / 컴인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스코어는 영화음악의 모든 것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영화음악가, 감독의 인터뷰가 실린 것이 《스코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 맷 슈레이더가 인터뷰한 영화음악가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목차에 나오는 인물들만 봐도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다. 퀸시 존스, 한스 치머, 데이비드 아널드 등 친숙한 작곡가 뿐만 아니라 제임스 캐머런과 같은 거장 감독의 인터뷰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낯설지만 그들의 영화 음악은 익숙하다. 어쩌면 이렇게 영화 음악의 거장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스코어》라는 영화를 구매 신청하고 각 작곡가들이 소개될 때마다 멜론 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이들의 음악을 확인했다. 음악에 얽힌 사연과 그 음악을 들으니 감동이 더욱 배가 됐다.
나도 음악을 공부하고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음악은 항상 제1의 관심사였다. 《아바타》와 《타이타닉》 연출로 역대 흥행 순위 1,2위를 차지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영화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잠시 소리를 끄고 영화를 보면 됩니다. 장면을 가득 채웠던 에너지와 감동이 순식간에 사라질 겁니다.' - 제임스 캐머런, 《스코어》 인터뷰 중에서
그가 강조한 바와 같이 영상에는 음악이 필요하다. 음악은 영화의 감동을 백배, 천 배로 만들 수 있다.
제임스 캐머런의 대작인 아바타, 타이타닉의 영화 음악을 만든 제임스 호너는 정말로 대단한 유산을 남겼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감독과 호흡을 중요시하면서 감독이 원하는 그 이상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타이타닉》의 주제가로 유명한 My heart will go on의 탄생 배경도 흥미롭다. 당초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마지막 엔딩을 가사 없이 연주곡으로 계획했고 가사가 있는 곡은 절대로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제임스 호너는 이 유명한 곡의 데모를 들려준다. 심지어 데모송도 셀린 디옹이 직접 불렀다. 마침내 감독은 이 곡이 마음에 들어서 엔딩곡으로 채택한다. 만약 그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면 이 불후의 명곡은 다른 영화의 삽입곡에 쓰였거나 사라졌을 것이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와 5개의 007시리즈 음악을 작곡한 데이비드 아널드 작곡가의 일화도 재미있다. 그는 《인디펜더스데이》의 주제 음악을 꿈속에서 들었다고 한다. 깨자마자 녹음기에 음성으로 녹음 후 나중에 들어보고 마음에 들어서 주제가로 사용했다. 다시 한 번 영감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뜻하지 않게 온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렇게 그가 영감을 얻은 이유는 온전히 자신의 작품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나 어디를 가나 그는 곡에 대한 화두를 놓지 않는다고 한다. 작가, 작곡가들, 다른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온전히 몰입하고 작업을 하다 보면 영감은 언제든지 우리를 방문한다.
마이클 잭슨의 음반을 제작한 최고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퀸시 존스는 '멜로디는 신의 목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 음악은 사람들의 감정을 밑바닥부터 건드릴 수 있는 장치라고 단언한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만난다면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이 없는 영화는 상상할 수 없다.
특히 그에게 영감을 가르친 앨프리드 뉴먼의 말이 인상적이다. "제 안에서 깜빡이는 '빛', 즉 직관을 믿으라고 하셨어요. 답은 늘 제 안에 있으니 특히 마감이 정해져 있는 영화음악을 만들 때는 그 답을 따르리고 하셨습니다."
즉 직관과 그 해답은 우리 안에 있다는 얘기다. 작가로서 작곡가로서 명심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답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한스 짐머는 영화〈인셉션〉, 〈다크나이트〉, 〈됭케르크〉, 〈인터스텔라〉, 〈캐리비안의 해적〉등 수없이 많은 명작들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다.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머로서 경력을 시작했고, 스스로 음악을 만들면서 배워나갔다. 그의 인터뷰에서 배운 내용이 참 많다. 특히 그는 영화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백지상태에서 채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백지를 채우려면 온전히 그 영화에 빠져들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자괴감에 빠지고 부담감에 시달리지만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마 많은 창작가들이 겪는 동일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실험 정신’을 유지한다. 수없이 곡을 뒤엎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웬만하면 비슷한 류의 영화 음악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그의 이 말이 너무 인상적이다. “제가 좋아하는 건 답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을 관찰합니다.”
이 외에도 영화 음악계의 전설 알프레드 뉴먼, 그리고 뉴먼가의 수많은 작곡가들, 즉 알프레드의 형제인 라이오넬, 에밀 뉴먼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토마스 뉴먼과 데이비드 뉴먼도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의 조카인 랜디 뉴먼은〈토이스토리〉등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유명하다. 거의 영화 음악계의 ‘바흐’ 가족이라고 일컫는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하워드 쇼의 인터뷰도 흥미롭다. 그는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미리 그 책을 읽어본 후 산책을 하면서 사색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로 낮잠을 자고 잠재의식에 그 영화를 집어넣으려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마감일을 엄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매일 끝낼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즉 정해진 작곡 일정을 엄격하게 자른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서 큰 틀을 잡는 데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조언이다. 나도 큰 일정을 정한 후 글을 쓰면서 전체 일정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써야 납기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감과 감동을 준 책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도 살아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감독들의 ‘철학’을 들으면서 앞으로 내가 작가, 음악가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을 생각하게 만든다. 덤으로 이들이 작곡한 곡들을 들으면서 글을 쓰니 더 영감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수많은 작곡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첫째, 아무리 유명한 작곡가도 창작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곡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이 일을 즐기고 사랑한다.
둘째, 영화 음악의 주체는 감독과 관객이다.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영화 음악 자체로서 하나의 작품을 형성해야 한다. 영화 음악은 단순한 배경 음악이 아니다.
넷째, 영화 음악을 맡으면 그 영화에 온전히 빠져든다. 몰입을 해야 작품이 나올 수 있다.
다섯째, 지나간 작품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말한 바와 같이 영화음악은 영화의 심장이고 영혼이다. 오랜만에 영화 〈타이타닉〉과 〈인터스텔라〉의 주제곡을 다시 한 번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