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 너무 많은 생각이 당신을 망가뜨린다
닐스 비르바우머.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오공훈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요새 나의 머리는 너무 복잡하다. 아니 현대인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인간의 뇌는 원시 시대의 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인간에게 위험 신호를 줘서 목숨을 부지하게 만든 ‘편도체’는 항상 각성 상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접하면서 긴장하고 경계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메일을 읽고 있더라도 5분 후면 전화벨이 울리거나 메신저, 또는 누군가의 호출이 있다. 한 마디로 조용한 순간이 없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머리는 항상 복잡하다.

심리하자 마틴 셀리그먼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러한 경보체계로 인해서 ‘재앙에 빠진 뇌’를 돌보게 하고,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러한 방어체계를 수행하면서 ‘생각펌프’를 계속 가동하다보면 체력을 소진하고, 질병에 노출된다. 얼마 전에 나도 과중한 업무와 걱정, 스트레스를 겪다가 독감에 걸려서 쓰러졌고, 나와 가까운 부장님도 마찬가지로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쓰러지셨다. 특히 그 분은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걱정이 많으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스스로 생각펌프를 가동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이는 우리의 면역체계를 붕괴시킨다.

르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생각을 해야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면 이 ‘생각’은 나를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오히려 생각은 우리의 자유를 옭아매는 존재인 것 같다.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 ‘상사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하지?’, ‘옆집 아이는 우리 아이보다 성적이 더 잘 나왔는데?’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것이 극단적으로 발전하면 사이코패스나 주의력 결핍 상태가 된다고 한다. 이들은 텅 빈 상태에 대한 불안으로 항상 남의 이목을 끄는 행동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정말 머리를 비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는 비우고, 멍 때리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나를 비웠을 때 새로운 무언가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침마다 5분씩 명상을 한다. 사실 그 이상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이고,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조사를 언급한다. 독일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스마트폰과 섹스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된다고 했을 때 무려 70%의 청소년이 스마트폰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렇게 요즘 사람들은 자극 없이는 못 산다.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통해서 무언가를 찾고, 본다. 또한 위스콘신 대학에서 실험을 한 결과인데, 어떤 한정된 공간에 실험자들과 전기 충격기를 놓았더니, 사람들은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2/3 이상의 사람이 스스로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다고 한다. 이 결과를 통해서 스마트폰이 원인이 아니고, 인간들 자체가 가만히 있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입증됐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머리를 비워야 할까?
텅빈 상태가 우리에게 행복과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신생아가는 출산 세 달 전부터 주로 몽롱한 상태를 자아내는 저주파 뇌파를 형성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임사체험자들을 인터뷰해본 결과 이들도 고통 보다는 ‘깊은 평화’를 느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도 출생과 죽음은 공통된 것이라고 믿었고 ‘출생은 무에서 나오고 죽음은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상을 하면서 느낀 텅 빈 상태와 임사체험을 하는 동안 느끼는 유체이탈 체험과도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텅 빈 상태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심지어 뇌전증, 우울증, 루게릭병, 치매처럼 정말 치명적이라고 부르는 병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생각만큼 고통스럽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이 상태가 되면 평온과 고요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뛰어난 음악가들의 뇌는 명상하는 선승의 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프로연주자들은 의식을 하지 않고 악기를 자동적으로 연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틀리지 않기 위해서 연주 자체에 신경을 쓰다보니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몰입의 상태에 이르기 힘들다.

쇼펜하우의 견해에 따르면 음악을 통해서도 텅 빈 상태를 경함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무아지경에 빠질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은 아주 한 순간이다. 그 동안 경험으로는 청중이 적거나 혼자서 연주할 때 이런 경험을 했다. 청중이 많으면 오히려 긴장하고, 실수에 대한 걱정으로 ‘완전히’ 몰입의 경지에 빠지지 못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앤디라는 타악기 연주자도 청중이 절반 밖에 차지 않은 공연장에서 “음악에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오히려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어서 더 몰입했고, 그는 이를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얼마 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영화〈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밴드 퀸Queen의 리더인 프레디 머큐리는 관객과 함께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라이브 에이드(Live AID)라는 대규모 공연에서 그는 관중들과 같이 호흡하며 무아지경에 빠졌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면 황홀경에 빠지면서 기억을 잃을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결국 이 책의 저자는 생각을 비우는 것은 결코 불편한 게 아니고,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은 태어날 때 텅 비어있었고, 죽을 때도 텅 빈 상태가 된다. 우리는 ‘무’에서 태어나서 다시 ‘무’로 돌아간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인생이라는 것을 좀 더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왓칭》의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바라볼 때,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중국의 고대 철학자인 노자가 강조한 ‘무위’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이제 책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어 가만히 호흡에만 집중한다.
딱 한 번이라도 이렇게 깊은 복식 호흡을 하면 마음이 많이 맑아진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 간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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