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서재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책의 표지가 참 멋지다. 책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 같다. 사진처럼 책장에 올려 놓고 자꾸 보고 싶은 그림이다. 늦은 오후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 돌아 올 때, 나를 반기는 석양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곤 한다. 붉은 빛 하늘을 보는 그 순간 내가 건강하게 살아 있음이 참 행복하다. 그 풍경에 부끄럽지 않게 하루를 충실하게 살았는지 나에게 묻는다. 나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는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명언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보낸 적이 있던가. 

 

 

소포클레스가 유명한 『오이디푸스 왕』를 지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태껏 몰랐었다. 그런 나의 무지때문에 카프카의 서재에는 내게 어렵고 낯선 책들이 많았다. 평소에 내가 쉽고, 익숙한 분야의 독서에 치중한 편협한 독서를 해 왔음이 명실공히 드러났다. 이 책에서 근사하게 소개해 준 책들을 언젠가 나도 읽고 오롯이 느껴 보고 싶다. 개중에서도 『책에 미친 청춘』에서 보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일 먼저 읽고 싶다. 

 

 

만일 인간 세상에 보편적인 윤리란 게 가능하다면, 그 윤리의 출발점은 조르바가 말한 바로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하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 즉 모든 생명이 고통받고 상처받을 가능성이자,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연민의 대상일 뿐이라는 그런 유대감이 아닐까? 사랑은, 윤리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이념과 종교, 법과 도덕률, 그 모든 것이 생명과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따로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조르바의 자유는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자유이다.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자유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자유, 세상 모든 생명이 그 생명력을 발산하며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자유. 내가 조르바에게서 배운 것,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결국 이것이다. "나는 거절한다, 삶이 아닌 모든 것을!"(200쪽~201쪽)

 

조르바의 말과 저자의 말에서 짙은 불교의 향을 느꼈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중 하나인 고(苦)제는 현실 세계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으로, 대표적인 고통은 생로병사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고통을 없애려면 스스로가 집착과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법정스님의 잠언집처럼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행복할 수는 없을까?   

 

일찍이 알베르 카뮈가 그의 책 『시지프 신화』에서 철학의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인간이 자살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답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을 『책에 미친 청춘』에서 보았다. 그 문장을 본 순간 카뮈의 말에 공감하며 필사노트에 옮겨적었었다. 우리는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자살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실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온전한 자유가 있을까? 나는 인간에게는 하늘에 부여받은 삶을 오롯히 견디는 의무와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답게 죽기 위하여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최선을 다해 생을 살다 맞이한 죽음의 문턱 앞에서 스스로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는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한다. 자살하지 않도록 살아야 할 이유를 저마다 꼭 1가지쯤은 가슴에 품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살하고 싶은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 올 때면 단호하게 저지해 주는 천사의 목소리가 누구에게나 들렸으면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든 뭐든! 진짜 아무리 생각하고 찾아봐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인생이 살 만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 그것은 필경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너무 자명하기에 아무 데도 쓸모 없는 진리다.(80쪽)      

무슨일이 있어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언젠가 죽는 그 날까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할 차례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알지 못한다는 숙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는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인생이거늘 주제 넘게 남의 인생에 감내라 배내라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 자신을 더 들여다 보려 노력하자. 

 

 

철학을 공부한 저자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도 오랜 시간 고민하며 방황해 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난 언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해 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사색,글쓰기와 여행'이 적절하게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 좋아하는 일들을 꾸준히 즐기다 보면 어느샌가 그 일을 잘하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나는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스스로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알기 위해선 그 전제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선 그것부터가 쉽지 않다.(104쪽~105쪽)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나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나를 살아가게 한다. 조용한 밤 스탠드를 켜 놓고 그 불빛아래 책장을 넘기는 그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다. 어떤 방해도 없이, 잡념도 없이, 근심걱정도 없이 책에 빠져드는 그 시간이 나의 어두운 시간을 밝게 견디게 만든다. 

 

어떤 책이든 좋아하지만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동지를 만날 수 있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책에 대한 애정과 추억과,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묘한 동질감에 안도한다. 저자의 종이책 사랑에도 공감한다. 인간이 감정과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할 때 부터 지금까지 널리 애용되어 왔던 것은 종이책 뿐이다. 종잇장을 넘길 때의 느낌을 전자책은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 종이책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 한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코헬렛』은  청춘들을 향해서도 "청년들이여, 너의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너의 젊은 날을 마음을 다해 기뻐하라. 네 마음에 진정으로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이는 대로 좇아 행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179쪽) 

 

'사람이 얼마나 행복하게 될 것인지는 자기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말했다. 똑같은 일을 두고도 만족하는 사람과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매일 매일 소소한 일상을 기쁘고 즐겁게 여기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내가 웃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작은 일에도 크게 웃고 즐거워하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더 행복해지려면 일상에서 그날그날 재미있고 즐거운 순간을 많이 만들면 된다. 경험하는 자아를 재미있고 기쁘게 만들어주는 것.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다. "나는 뭘 할 때 재미있고 즐거울까?" (216쪽)

부처님은 "현명한 자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제대로 알고 피한다"고 하셨다. 짜증내고, 불평하고, 불행하다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일 뿐이다.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 행복해 지는 일만으로도 짧은 우리 인생이다. 한 번 뿐인 우리 삶, 진심 행복하게 살다 가자! 

 

 

그가 사색하고 책을 읽는 이유는 순전히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더 잘 알아보는 일을 하며, 내가 잘살고 잘 죽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만을"찾기 위해서였다. (259쪽) 

위의 '그'는 누구일까? 그는 바로, 둥근 탑의 서재에서 독서하고 사색하면서 20년간 오로지 『수상록』을 쓰는 데 몰두한 몽테뉴다. 그리고 저자 김운하의 침대 머리맡에는 몽테뉴의 책이 있다고 하니 이 책의 제목이 『카프카의 서재』가 아니라, 『몽테뉴의 서재』였어도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슬그머니 해 본다. 언젠가 내 침대 머리맡에 항상 있을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하여 오늘도 즐겁게 책을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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