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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출판사들이 어떤 원고를 출간하기로 결정했다면 두 가지 조건, 저자 프로필과 원고 덕분이라고 한다. 반면 인터넷 서점에서 독자들은 실제 원고를 볼 수 없으므로 주로 제목과 표지글, 저자의 프로필, 출판사 보도자료, 실제 책을 읽은 사람들의 서평을 참고하여 책을 구입한다.
내가 이 책을 인터넷 서점의 광고에서 만났을 때 첫 눈에 반했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표지에 제목도 근사했고, 무엇보다 '아시아여성 최초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라는 타이틀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다른 직업도 아닌 내가 동경하는 '교수'라는 직업, 그것도 하버드라니! 내게 마냥 꿈 같은 그 세계에 진짜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함께 배송 되어 온 다른 책들 틈에서 이 책을 제일 먼저 집어들고 단숨에 읽어내렸다.
석지영교수의 자서전적 성격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읽다 포기한 힐러리가 쓴 『살아있는 역사』라는 책을 떠올렸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을 읽고서 힐러리에게 관심이 생긴 나는 힐러리의 자서전적 성격의 책『살아있는 역사』를 읽는 것을 시도했었다. 어린시절부터 대학, 그리고 법조인으로서의 힐러리가 대통령 선거를 돕는 그 때까지 읽다가 말았다.
이 책이 힐러리의 책처럼 그렇게 두꺼웠다면 이 책 역시 내가 읽다 포기한 몇 안 되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계속 읽어 나갔고 하버드 법대에서 법을 전공하고 교수가 되는 그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게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는 소개팅을 나가기 전에 그 사람의 프로필을 듣고 가득 기대를 품고 있다가, 실제로 만난 그 순간부터 하는 얘기가 영 내게 지루하고 내가 관심 없는 부분이어서 실망을 가득 품은채로 인내하며 들어주다가 어느 순간 반갑게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해서 나도 마음을 열고 진솔한 얘기를 나누게 된 사람 같은 책이다.
"나는 하버드법대 첫 동아시아계 종신교수이자, 첫 아시아여성 교수, 그리고 첫 번째 한인교수가 되었다."
석지영교수의 프로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 역시도 학자를 영감과 자부심을 주는 존재로 인정한다. 교육과 배움의 성취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석지영 교수가 살고 있는 세계가 매력적일수록 반대로 나는 조금씩 의기소침해졌다.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36세에 117권을 저술한 기네스에 오른 작가 김태광은 평범한 사람일수록 책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그의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던 나였지만 석지영 교수의 프로필을 보고 실제 현실은 책을 출간할 수 있으려면 대단한 프로필을 가져야 하는 게 진실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이 그렇대두 별 수 있나? 지금 당장 대단한 프로필을 가질 수 없으니 평범한 사람도 열심히 책 읽고 글을 쓰고 매일 꿈꾸다 보면 책을 낼 수 있다고 계속 믿는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석지영교수가 이뤄 낸 '아시아 여성 최초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 타이틀보다 더 관심이 간 것은 학생이었던 저자를 하버드 법대의 교수로 키워 낸 스승들이었다. 석지영 교수도 모튼 호르위츠 교수가 먼저 나서서 자신이 교수가 될 것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면 교수로서의 미래를 혼자 깨달을 수 있었을지 확신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지니는 학자로서 훌륭한 경력을 쌓게 될 거야" 상냥한 교수 빌이 해 준 연구와 글쓰기 작업에 대한 조언은 석 교수의 글쓰기 원칙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장을 보면서 그것은 나에게도 유익한 조언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바로 필사노트에 옮겼다.
글쓰기는 배움의 한 방법이지, 학습을 마친 마지막 단계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빌의 충고를 마음에 품자 괴로운 저자로서의 내 경험은 곧 끝났다. 이는 글쓰기에 박차를 가해 줄 성스런 영감을 바라거나, 혹은 박식함의 완전한 성취를 글쓰기의 전제 조건으로 설정하는 것을 접는 것을 뜻했다. 글을 쓰겠다는 시도는 감히 모든 것을 안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번에 조금씩 배운다는 불완전한 과정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자의 프로필, 그를 수식하는 수식어는 찬란하게 빛난다. 그를 수식하는 많은 말보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석지영 교수를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하버드 캠퍼스를 걷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 상황의 제약 없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공간과 자유를 주는 직장을 이 세상에서 찾은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하고 싶은 그런 일이었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들이 이끄는 대로 어디든 자유롭게 축복받은 것처럼 따라갈 수 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