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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의 겉과 속 - 한국 정치는 왜 늘 복마전인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한국 정치의 최대 현안이라 할 10가지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형식을 취했다. 정치 이론과 개념은 그 주제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별도의 용어 해설 부분을 만들어 설명함으로써 논의의 흐름을 살리고자 하였다. 모두 60개의 용어를 풀이한 용어 해설은 책의 끝 부분에 실었으며, 글을 읽다가 이해가 어려울 경우 곧장 찾아볼 수 있도록 해당 페이지를 본문에 표기하였다.(p.11)
나의 경우도 친절한 용어 해설이 도움이 되었다. 친절하다고 해서 내용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용어를 몰라 설명을 봐도 그 내용이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ㅋㅋ)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하나 하나 뒤적거려가며 읽거나 다 읽고 나서 한 번 쭉 읽어보아도 좋을 듯하다.
당파성이 없는 저자의 중립적인 시각에서 다양한 국내, 국외 학자들의 이론이나 설명, 의견들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우리 정치에 대해 불평하고, 비난하며, 비관적인 면만 봐 왔다. 정치 현실을 바로 보기 보다는 '잘못되고있다' '나쁘다'라는 생각을 미리 가진 채 정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현상이든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 정치도 좋은 부분, 칭찬할 부분은 분명 있을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한국 정치에 대한 '긍정과 낙관'의 힘을 발견하기를 기대한다.(p.13)
왜 사람들이 정치를 하려고 할까? 시민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그리고 왜 권력을 못 잡아서,, 상대방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날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치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닌지....우리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안전을 보호받기 위해, 사회를 만들면서 통치자에게 권력을 주었다. 그리고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에게 힘을 부여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권력을 잡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이타적이었던 인간도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게 된다.
이기성과 이타성을 같이 가지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결국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게 인간 아닐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결국에는 남을 생각하고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게 좋다는 걸 깨닫게 되는 진정한 이기주의가 될 순 없는걸까?
사회적 지위나 능력을 남에게 인정 받는 사람보다 도덕성을, 사회 전체에 이로움을 주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을 인정하며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부'나 '권력'을 따라다니며 아부하지 않고 '의로움'을 칭찬하고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 사회는 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제 1장 왜 한국 민주주의는 경이의 대상인가?
- 강정인은 "해방 이후 한국 정치는 경제 발전은 물론 민주주의의 수립과 관련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면서 "특히 1987년 이후 20년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 있어서 민주주의가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된 시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구 국가들은 현재의 자유 민주주의로 성숙하는 데 적어도 200년 이상 걸렸다"면서 "지난 50년간 이룩한 한국의 민주화를 자기비하적으로 '일탈' '파행' '왜곡'으로 보는 시각을 시정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강정인은 "이상화된 서구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열망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강력하게 투쟁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왔다"면서도 "부정적으로는 서구 민주주의를 너무 이상화한 결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예외'와 '일탈'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자기비하의 심리를 내면화해 오게 됐다"고 지적했다.
- 물론 아직 부족한 게 많아 더욱 노력해야 한다. 성찰할 것도 많다. 다만 과대평가는 물론 과소평가도 하지 말고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제 2장 왜 한국은 '정치과잉' 사회가 되었는가?
- 핸더슨은 한국인은 '정치과잉'을 한국인들이 중앙권력의 향배에 따라 생명을 포함해 자신의 운명이 좌우되는 시대를 살아온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고 봤다. 그가 한국의 정치 문화를 중앙권력에 모든 것이 휘말려 들어가는 이른바 '소용돌이의 정치'라고 표현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 파멸과 분열은 한국 정치에서 일상적인 것이 되었으며, 그로 인한 환멸은 정치를 탐욕과 이권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그런 전통은 먼 훗날까지도 살아남아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최대 요인이 되었다.
- 대중에게 접근하려는 모든 시도를 표를 노린 것으로만 보면 모든 정치적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언론과 대중은 그 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인들을 악의적으로만 해석하기에 바쁘다. 당론을 따르면 소신이 없다고 비난하면서도 막상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한사코 외면한다. 엘리트보다 서민의 대변자를 원하면서도 정치인들의 '무식'을 탓하면서 그들이 엘리트답게 행동해 주기를 원한다.
- 우리 인간은 남들이 인정해 주는 맛으로 세상을 산다. 그래서 그 인정을 얻기 위해 험난한 투쟁을 한다. 한국인은 사회문화적으로 워낙 동질적인 사람들이어서 똑같아지려는 평등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그만큼 인정투쟁 의지도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게 바로 한국의 발전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가장 유리하거니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게 바로 정치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동시에 숭배하는 이유다.
제 3장 왜 유권자는 지도자에게 과도한 기대를 갖는가?
- 자신들에 대해 국민적 저주가 쏟아지면 그 원인을 규명해 고쳐 나갈 생각은 않고 정치의 때가 묻지 않은 비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화장을 해 보겠다는 발상은 자기부정과 자해의 극치라 할 만하다. 이는 한국 정치엔 '전문성'은 없으며 '신선도'가 가장 큰 무기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대통령이 총리나 장관에게 위임하지 않고 배타적 권한으로 직접 임명하는 자리가 460개,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제공할 수 있는 고급 일자리 수의 총합이 수천 개이니,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아첨하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지 않겠는가.
- 유권자들이 투표만으로 자기 할 일을 끝냈다며 손을 털고 돌아서는 한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권리만 알고 책임은 모르는 유권자들일수록 지도자에게 과도한 기대를 갖는 법이다. 유권자들이 권리와 책임의 균형을 취할 때에 비로소 지도자의 리더십도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제 4장 왜 젊은이들은 투표를 포기하는가?
- "엘리트는 권력을 잡으면 그들이 이끄는 조직의 표면상 목적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전력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조직이 목적 그 자체가 되며, 조직의 영속화가 지상 목표가 된다.
- 한국 정치가 늘 국민을 읽는 데에 실패하는 건 과도한 민중예찬론과 참여의 불균형 때문이다. 민중을 읽으려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민중을 규정하고, 민중의 터전에 기반을 두지 않은 극소수만이 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나중에 민중의 보복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감의 정치' 사이클이 그칠 줄을 모른다. 유권자들은 늘 응징하느라 바쁘다. 역동성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만, 선거가 엘리트 밥그릇 교체의 주기적 행사로 전락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우선 정치 비평부터라도 국민 읽기에 주력해 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유권자들, 특히 젊은이들의 투표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제 5장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 이른바 '서울 공화국' '서울대의 나라' '삼성의 나라' 등으로 대변되는 1극 체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쏠림의 저주라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발전과 민주화는 쏠림의 축복일 것이다.
- '욱'을 모르면 실패한다. 노무현 정권은 탄핵 사태의 본질이 '욱'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 의미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또 다른 '욱'에 의해 응징당한 셈이다. 촛불집회에 혼쭐이 난 이명박 정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건 소통을 무시하는 세력은 '욱'에 의해 응징당하게 돼 있다. 감히 한국인을 가르치려 들거나 포섭하려 들지 말라. 겸허한 자세로 진지한 소통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욱'의 저주를 받게 돼 있다. 한국인의 '욱 역동성'은 저주도 아니고 축복도 아니다. 최소한의 자존감이다.
- '시위 공화국'의 '감성 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시위 민주주의'는 한국의 숙명이 아니다. '심정 폭발'이 있을때에 한해서 움직이는 권력집단의 오래된 관행이 척결되지 않는 한, 폭력시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혁신은 바로 그런 문제를 다뤄야 한다. 한의 표현과 '뗑깡'을 구별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일에 투자를 해야 한다.
- "18대 총선은 '거대 보수' 정치 세력을 탄생시켰다. 한나라당을 포함해 18대 국회에서 보수 세력은 203석에 달한다. 재적의원 3분의 2를 넘는, 개헌까지도 가능한 압도적 구도이다. 18대 국회에서 처리 못할 법이 없다는 의미다. 제대로 견제 받지 않은 신자유주의, '보수일색'의 법률과 제도가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제 6장 이념이 파벌을 만드는가, 파벌이 이념을 만드는가?
- "우리 사회의 이념과잉 사태는 또다시 나를 우울하게 한다. 진보든 보수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방편 중의 하나일 뿐 그것 자체가 목적일 순 없다. 진보와 보수의 양분법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는 생각도 아집이자 독선이다. 모든 사람을 두 줄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좌든 우든 선택하지 않으면 비겁한 사람,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히는 세상이 됐다. 광복 직후의 상황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숙의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벤자민 바버는 숙의를 "상호 경청의 기술"이라고 했다. 건국대 의대 정신과 교수 하지현은 <소통의 기술>에서 2대 8의 파레토 법칙을 적용할 것을 각별히 주문했다. 2분 말하고 8분을 듣는 '경청'의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듣지 않고 소통할 수는 없다. 능변과 다변은 소통의 적이다. 소통은 경청이다.
- 자기애에 빠진 사람들은 주목받고 떠받들어지고 심지어 '신격화'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럴 때에만 스스로 살아 있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 세계를 자신의 위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주변 세계는 자신을 중심으로만 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만 존재하며 내가 우주 전체라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천상천사 유아독존의 유형이다." (^@^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나요?_-)
- 한국 사회는 증오에 근거한 분열의 정치보다는 상생에 근거한 화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시대정신이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런 화합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화합은 이념이 파벌을 만들기보다는 파벌이 이념을 만든다는 걸 깨달을 때에 더욱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될 것이다.
제 7장 여론은 어떻게 형성되며, 어떻게 바뀌는가?
- 서울대 교수 박찬욱도 "지금과 같은 정당의 후보 선출방식은 여론 조사의 본질을 모르는 '조사문맹' 현상이자, 정치적 선택이 가요 인기투표와 같다고 여기는 포퓰리즘"이라며 "노선과 이념에 관계없이 누구든 지지율만 높으면 된다는 풍조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 8장 지방자치의 성공 없이 정치 발전이 가능한가?
- 지방의 문제를 지방이 먼저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내부 교정 노력과 더불어 차분한 설득이 병행되어야 한다. 중앙집권 체제가 가져온 '레드 오션' 체제가 모든 한국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과 더불어 지방이 '블루 오션'이라는 점을 이해하게끔 해야 한다. 지방의 무능과 부패를 말하는 사람들에겐 "권한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분권 시스템은 동기부여를 강화할 뿐 아니라 더 큰 유연성을 가져다줌으로써 전체의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걸 실천으로 보여 줘야 한다.
제 9장 대학입시는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은 잠을 자는 7시간을 빼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 데 쏟아 붓고 있었다. 어디 이 학생뿐이랴. 주변에는 대학생이나 고시생보다 더 많이 공부하는 초등학생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외톨이가 돼 친구를 만나러 학원에 가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도 모진 짓을 시키고 있다.
- 2008년 6월 서울대 교수 전상인은 "대한민국의 상류계층은 체제의 안정과 재생산을 위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숨은 기능에도 무지했다. 한국적 근대화 모델의 수혜자로서 그들은 낙오집단이나 소외계층에 더 많이 베풀어야 했다. 이를 게을리한 대가로 그들은 국민적 적대감을 자초했고, 기득권을 지키고 빼앗는 과정에서 이념 갈등은 필요 이상으로 첨예화되었다. 여기에 가세한 것이 대한민국의 소리 없는 침몰이었다"고 주장했다.
제 10장 대중지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1960~1970년 대 국민으로 봤기 때문에 이런 위기에 빠졌습니다. 정부와 여당도 국민 변화에 따라 정치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 인터넷, 교육 수준, 경제력, 국민 수준이 변한 상황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를 알아야 합니다. 시민 입장에서는 촛불을 끄면 '대한민국이 불행해진다'는 겁니다. 따라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상시적 참여와 감시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보장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 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통령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국민에게 항복하고 시작해야 합니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맺음말 中
"자신들과 관계있는 공약 찾기, 부모님과 함께 투표장 가기, 선거관리위원회 자원 봉사, 소감문 쓰기 등 다양한 교육활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전후해 학교에서 '계기 교육'을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우리 생활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살아 있는 교육을 통해 진정한 민주시민을 육성해야 한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식의 사고의 틀을 벗어나 더불어 같이 살면서 늘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며, 이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영원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를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세계 각국에 수출함으로써 우리도 인류의 진보에 적극 기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