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천재들
김병기.신정일.이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시대의 천재, 역사의 천재는 시대를 뛰어 넘은 사람, 진정한 천재란 시대의 상식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천재성이 빛나기 위해서는 시대가 도와 줘야 한다. 저자는 뛰어난 머리로 세상의 앞길을 먼저 갈파했기 때문에 불행했던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잔을 피하지 않고 마심으로써, 끝내는 후세 사람들에게 상식이 되었던 천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서문에서 말했다.

(^@^ 지금 우리 현실에 필요한 인재는 머리가 좋거나, 뛰어난 기술을 계발할 수 있는 그런 천재보다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이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굳건한 천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그러한 천재를 조력해 주는 시대가 되고 말이다) 

<1부 시대를 뛰어 넘은 천재>

천재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그 미래는 때로 과거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대부분이 현실에 얽매어 있을 때 미래를 지향하는 사람이 천재이며, 오히려 과거에서 미래의 길을 찾는 사람 역시 천재인데 지눌이 그랬다.(p.19~20) 무신정권은 교종을 억압하는 한편 선종을 지원함으로써 불교계를 친정권적인 세력으로 개편하려 했지만 지눌은 교종을 억압함으로써 선종을 중흥시키는 반사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선종과 교종의 융합을 시도했다. 바로 이점이 그의 천재적 업적인 것이다.

(^@^ 오늘 우리 정치는 서로를 비방하고, 억누르면서 자기당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데 화쟁사상의 정신으로 당파싸움보다는 진정한 정치의 미래를 위하여 융합까지는 무리일지라도 서로의 의견을 정당하게 들어주는 자세는 좀 가져야하지 않을까나?) 

천재란 일반적인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을 뜻한다.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획득했기에 서희를 외교의 천재로 꼽는것이다.(p.44) 서희가 영토 상실의 위기를 위기를 영토 확장의 기회로 전환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냉철한 현실인식 속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고려의 국익을 지켜내고 확대한 것이었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외교 현실은 소손녕이 남하했을때 고려 조정의 태도와 비슷하다. 항상 지레 짐작하고 협상에 임한 결과 국익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희처럼 냉철한 판단력과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외교에 임하는 천재적 외교관이 절실한 실정이다. (p.58)

(^@^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당연한 우리 것을 제대로 주장할 강단도 없는 우리나라의 외교 현실에 다른 어떤 천재보다 서희 같은 천재가 우리나라의 구세주가 아닐까나?)

일개 관노가 벼슬아치들과 함께 별감으로 나아가 군주 앞에 선다는 것은 보통 파격이 아니었다. 국가 발전을 위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발탁했던 세종이란 경영자의 열린 자세가 국가 발전을 물론 장영실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p.66)

(^@^ 천재를 알아보는 탁월한 눈, 비록 그 천재가 어떠한 신분에 있든 그 능력만을 봐 주었던 세종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장영실을 기억하고 있게되지 않았을까? 과거 신분때문에 불운했던 천재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학벌이라던가 경제적 상황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썩히거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세종이나 정조와 같은 임금이 그리울 뿐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시켜 '남북국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역사 공간을 제시한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 그는 평생지기이자 문우였던 박제가가 "누구보다 박학하고, 시를 잘 지으며, 나라의 역사에 밝은 이"라고 했을 만큼 당대 일급 지식인이었다.(p.82) 양근군수가 되었을 때였다.....호족은 일반백성들에게 기쁘면 술을 주지만 성화가 나면 명분으로 꾸짖어 사사로이 묶고 때리기를 마음대로 했다. 이를 비통하게 여긴 나는 법으로 바로잡았다. 한 연장자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말하기를 "자네가 다스린 지 수십 일에 양반 여덟을 태형에 처했으니 잘못되지 않을까? 라고 했다. 나는 대답하기를 "나랏일을 보는 데 <대전통편>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것이 양반만을 위한다는 것은 못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양근의 호족들이 매우 두려워했다 -고운당필기-(p.91)

(^@^ 우리나라 헌법을 비롯하며 모든 법은 있는 사람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제발 나랏일을 보실 때 법대로, 법의 정신대로 하시길.)

 
유득공은 어려운 환경과 서류라는 자신의 처지에도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여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한문신사가, 북학자, 규장각 검서관, 역사지리학자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관료 생활 중에도 대쪽 같은 기질로 온갖 회유에도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노력했으며, 힘든 검서관의 생활 속에서도 뛰어난 두뇌와 성실성으로 도외시되고 미개척 분야였던 역사지리에 몰두하여 불굴의 의지로 연구에 매진하였다. 자신의 환경의 한계를 극복한 그는 진정한 조선의 실학자로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였다.(p.100~101)

 

<2부 하늘이 내려 준 천재>

 성리학 이론을 전개한 율곡은 항상 시세를 알아서 옳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율곡은 항시 위로부터 바르게 하여 기강을 바로잡고 실효를 거두며, 시의에 맞도록 폐법을 개혁하고, 사화로 입은 선비들의 원을 풀어주며, 위훈을 삭탈함으로써 정의를 밝히고, 붕당의 폐를 씻어서 화합할 것 등 구체적 사항을 논의하였다. 또한 율곡은 진리란 항상 현실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현실을 떠나서 별도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율곡은 학문연구에 있어서도 주체성이 강했다.(주자의 이기호발설에 정면으로 도전)

 어려서부터 남다른 천재성을 보인 율곡 이이. 현명한 어머니의 가르침과 끊임없는 자신의 노력으로 현재까지 학자로서, 정치가로서 큰 울림을 전하는 그는 그 명성이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천재였다. (p.132~133)

(^@^ 정말 천재였던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걱정한 것이 오직 나라 일이었고,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살아있는 백성들이 모두 복이 없어서 이 어른이 돌아가셨다" 이 한마디에 그가 얼마나 존경받고 칭송받는 사람이었는지 느껴진다. 늘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마주치는 훌륭한 인물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지 않나싶다.)

 
이가환의 기억력은 고금에 뛰어나 한 차례 눈으로 보기만 하면 죽을때까지 잊지 않다가 우연히 자극만 받으면 한번에 수천 백마디를 외워 마치 술통에서 술이 쏟아지듯 유탄이 퍼부어 판때기를 뒤엎듯하다. 중략- 모두 정밀히 연구하고 알맹이를 파내서 한결같이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 같았다. 질문한 사람마다 깜짝 놀라서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천재로 소문났던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의 천재가 이가환이었으니(p.139~141)

이가환의 박학함은 당대 최고였는데, 다른 학자들이 모두 유학 경전에만 매달리고 있을 때, 수리와 기하학, 역사, 지리에 통달하였다. 지금 내몽고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토번(투르크)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p.143)

(^@^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많은 부러움을 샀던 인물이다. 한번 보면 죽을때까지 기억한다니, 제일 부러운 최고의 능력..... 그러한 천재를 시기하여 억울하게 죽인 그 바보같은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유학에 매달릴때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인재는 바로 이가환이었을텐데.......천재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만든 시대에 대하여 새삼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이상설 그는 개인의 안위를 위해 뜻을 굽힌 지식인들과는 달리 나라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적극적인 행동으로 충절을 드높인 선각자요, 애국자였다.(p.177) 천재 애국자라 불린 이상설. 신구학문에 특출났을 뿐 아니라 청아한 선비의 기상과 품격이 있었으며 참으로 나라를 사랑한 미래지향적인 인물이었다. 부재 이상설은 망국의 한을 안고 남의 땅, 남의 강가에서 한줌의 가루되어 흘러갔다. 망국의 한을 품은채... 자신이 가진 많은 지식과 학문을 분토처럼 여긴 천재 애국자 이상설은 그렇게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핑계를 대며 회피할 때 그는 오직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을 뿐이다.(p.187)

(^@^ 그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기에 정말 대단하다. 자신의 안위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행한다는게 쉽지 않다는 걸 모두가 잘 알지 않는가.그냥 일반사람도 아니고 천재였는데 말이다.)
 

<3부 시대와의 불화>

 최치원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당나라의 빈공과에 합격하여 벼슬을 했고, 학문의 수준과 재능을 인정받아 당에서 출세할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신라를 위해 쓰고자 귀국한다(p.193) 

 난랑비서문에 나오는 풍류도에 관한 그의 유명한 글은 그가 신라 고유의 사상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최치원의 사상이 부분적으로는 당나라의 것을 찬미하면서도 그 근본에 있어서는 신라 고유의 전통 사상에 외래사상을 융합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상과 종교가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화합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모든 사상과 종교를 회통시켜 하나의 통일적 사상체계를 이루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이것이 당대 권력 다툼과 부귀영화에만 눈독을 들였던 많은 진골 귀족들 사이에서 최치원이 돋보이는 이유라 하겠다.(p.204~205)

 최치원은 당대의 현실정치에서는 실패했으나 그의 유학 정치 사상은 고려시대 이후 1,000여년이 넘는 세월을 이 나라의 주류 정치사상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최치원은 시대를 앞서간 사람답게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p.210)

김시습의 생애는 어린시절을 빼놓고는 일생동안 가시밭길뿐이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그가 선택한 길을 한번도 굽히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간 것이다.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이고

     삶이란 그날그날 주어지는 것이었고

     살아생전의 희비애락은 물결 같은 것이었노라고

그의 글을 읽다가보면 슬픔이 절절한 글들이 너무도 많은데, 과연 한 평생을 방랑자로 떠돌았던 매월당의 생애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것인가? 자신의 천재성을 알면서,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없음을 너무 일찍 깨달은 좌절한 천재의 모습을 김시습에게서 본다. (p.238~239)
 

이벽은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사회에 전파하려고 하였으며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목숨을 끊는 결단성도 갖고 있었다. 유교, 그 중에서도 주자학만을 따르고 거기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조선 후기의 답답했던 시절, 새로운 학문으로 조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이벽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역사 속 천재라 하겠다. 아쉽게도 시대와 불화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 때가 이르렀음을 느기고 방 안에 좌정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의복을 갈아 입지 아니하며 철야기도와 묵상에 전념하였다.(p.256) 이 구절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의 굳건한 의지에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4부 신기의 문장, 글로써 세상을 아우르다.>

이규보는 벼슬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인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써 야망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관직에 나아간 뒤에도, 세상을 위해서 자신의 이상과 품은 뜻을 반영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는 경세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지식인이 지녀야 될 미덕인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가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적으로 양지를 좇았던 지식인의 전형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의 뛰어난 문장을 볼 때는 고금으로 독보적인 존재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p.292)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 누구나 어떤 경험을 통해서든 느끼지 않나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 이상을 쫓은 사람도 현실을 쫓은 사람도 마냥 어느 하나만 추구한다면 문제이지 않을까요. 그 사이의 적절한 중간. 중용을 제대로 선택하는게 어렵지만 올바른 길이 아닐까나.)

 정철은 한시뿐만 아니라 시조,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말 문학의 최고봉이라 평가를 받는 가사를 남겼다. 당대로서는 드물게 한문학과 한글문학에 두루 능통한 문인이었던 것이다.(p.309) 정철의 진면목은 진정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성품은 늘 권력 지향적이라서 항상 권력의 언저리에 있었고 그래서 벼슬에 들고 나기를 여러 번 하였다. 하지만 송강 정철의 문학적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솔직했으므로 실수와 적이 많았고 그래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 송강 정철이었다.(p.323)

(^@^ 국어 수업에 보았던 정철의 관동별곡, 성산별곡, 속미인곡, 사미인곡, 훈민가 등의 작품은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참 솔직한 사람이었구나. 너무 솔직해서 그렇게 험난한 삶을 살았지만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 후세에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구나)  


한 나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한 채 전부를 걸어버린 사람이 황현이었다. 한말에 전라도 광양 땅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천재로 이름을 날렸던 황현이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한 생애를 보내다가 오백년 사직의 조선왕조가 무너졌을 때 한 시대의 책임을 지고 생을 마감한 것 역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p.326)

빼어난 시인이자, 역사가, 그리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황현은 조국의 운명이 다하자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고자 자신의 생마저 마감한다.

 "내가 꼭 죽어야할 의리는 없지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지 500 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 하늘로부터 받은 떳떳한 양심을 져버리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평소에 읽어온 책을 져버리지 않았다. 이제 길이 잠들려 하니 참으로 통쾌하다"(p.343)

매천이 살았던 시대는 혼돈의 시대였고 비극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시기를 살았고, 죽음도 선택했다. 결국 매천은 후세의 우리에게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매천은 살아 있는 동안 한번도 국가의 녹을 먹지 않았지만 오백 년 사직에 누구 한사람 책임을 지지 않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자결을 택했다.(p.348)

그는 시대와의 불화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지만, 진정한 천재나 지식인이 세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보여준 조선의 마지막 선비였다.(p.349)

(^@^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 않고 매천을 꼽을것이다. 그도 똑같은 인간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기가 쉬웠겠는가. 그래도 그는 유학자로서 선비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절명했다. 자신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양심과 자신이 책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에 따라 결코 쉬울 수 없는 결단을 내린 점을 높이 사야할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