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 세이지 1 -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
고선미 지음 / 스프링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2014년 1월쯤 그러니깐 스물아홉 살에 클라리 세이지를 처음 읽었고, 2022년 서른일곱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이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읽다 보니 책의 내용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 것은 내 기억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 소설의 얘기가 충분히 현실에 있을법한, 결혼한 여자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여서 인 것 같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소설에 등장하는 인터넷 주부 카페 이름이 '클라리 세이지'다. 클라리 세이지는 허브의 한 종류로, 향이 깊고 부드러워, 마음의 안정을 돕고 피로를 달래주는 식물이라고 한다. 허브처럼, 카페를 통해 주부들이 속상하고 힘들 때 카페에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얘기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받으며 감정을 해소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저자는 카페 이름과 그 공간이 갖는 상징성처럼,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그 카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별명)도 특색이 잘 드러나도록 잘 지었다.

먼저 닉네임'갈색 물방울 하나면'은 잡지나 광고에 쓰이는 촬영용 음식을 만드는, 잘나가는 푸드스타일리스트 '해밀'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노하우로, 마법 같은 갈색 물방울이 담긴 병을 비밀리에 가지고 있다. 그 갈색 물방울은 음식에 닿으면 빛깔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화학합성 액체인데 극약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몇 방울만 음식에 들어가도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갈색 물방울은 해밀이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성공하는데 일조했을 것이고, 또 그거 하나면 외도하는 남편에게 복수할 수도 있으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별명이다.

이 책은 '패왕별희' 지아가 포스트잇에 쓴 문장으로 아래와 같이 끝난다.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 … 늦었지만, 당신 사랑하고 갑니다

p.340

'패왕별희'는 패왕인 항우가 애첩 우희와 이별한 고사를 경극으로 만든 것이다. 몰락한 왕에 대한 사랑과 정절을 죽음으로 증명한 첩의 이야기를 담은 경극인데, 지아는 첫사랑을 본인은 병으로 기억을 잃었지만 정말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첫사랑과 이별하고 받은 상처로 인하여, 사랑을 믿을 수 없어 남편을 사랑하지 않은 채로 결혼했다. 하지만 병으로 떠나기 전 남편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사랑에 무심해 보였지만, 사실은 닉네임처럼 사랑에 열정적인 여인이 아니었을까. 늦게나마 남편을 사랑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어서 슬프지만 행복했을 것 같다.

정장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멋지고 당당하게 일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되는 '10센티 하이힐'은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강제로 전업주부가 된 전직 커리어 우먼 강수정이다. 주도권을 내주는 척하되 주도권을 쥐고 사는 지혜로움, 존중받고 살기 위해서 존중하는 척해 주면서 무시당하지 않고 사는 법 등 내조만 여왕의 현실적인 조언은 결국 남편을 진정 사랑하지 않는 아내 본인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든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행복을 최대한 추구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한때 잘나가는 걸그룹 멤버였지만 비굴하게 일해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싱글맘 신소영의 닉네임은 내가 제일 잘나가'이다. 결과론적으로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봐 주고 사랑해 주는,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 소영이 결국엔 이 소설에서 제일 행복한, 제일 잘나가는 여자가 아닐까.

4인 4색 같은 듯 다른 듯한 결혼한 여자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결혼을 했든 안 했든, 현재 사랑받고 있든 사랑받고 있지 못하고 있든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선택을 내리든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나'이고, 나의 행복이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나의 보물 같은 아이들에게 예쁜 사랑을 줄 수 있고, 내가 행복해야 우리 아이들도 덩달아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진정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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