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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날의 선택
유호종 지음 / 사피엔스21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남들보다 유난히 겁도 많고 무서운 것도 많은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늘 궁극적인 공포의 대상이자 절대로 대면하고 싶지 않은(가능하다면) 그런 존재였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가까이 느꼈을 때는 바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이었다. 거의 20년 전의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날 일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쪼글쪼글하고 여윈 손을 내밀어 힘겹게 나의 작은 손을 잡으시던 할아버지. 온 방안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던 죽음의 기운. 그때 늘 막연하게만 들어왔던 '죽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후에 부모님 말씀으로는 내가 그 자리에서 무척이나 심하게 울었다는데 모르긴 몰라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이 슬퍼서이기 보다는 눈 앞에 직면한 죽음의 공포 때문에 무서워서 운 것이었을 것이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유독 죽음에 민감하다. 자살, 살인 이런 것들을 소름끼치도록 경멸하는 것은 물론이요 정말로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한다.(그만큼 선량해서라기 보다는 무언가를 죽일 때의 그 느낌을 참을 수 없다.)내가 누군가의 소중한 삶을 빼앗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으며 다른이가 나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라는 불변의 명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만은 영생할 거라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죽음. 정확히 말하면 죽음으로까지의 과정. 그리고 죽음 후에 펼쳐질 그 모든 것들을 향한 지나친 염려와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어쩌면 행운 일 수도 있겠다.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들은 많지만 잘 죽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과연 몇권이나 있을까? <살아있는 날의 선택>은 제목 그대로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존재를 인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으로 탈바꿈 시켜 감정적이지 않고 조금은 냉정하리만큼 객관적으로 대응하게 해준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다는 것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인간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평생토록 죽음을 두려워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애써 모른척 잊고 지낼 것인가. 아니면은 그 보다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당당하게 죽음과 얼굴을 마주 할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 시간 내가 늘 두려워만 해오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직도 죽음이 나에게 있어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겠다는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은 있을지라도)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한다. 눈으로 확인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평생을 두려움에 떨며 사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뒤돌아 보았을 때 난 참 잘 살았구나. 이제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겠다. 하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은 한번 작가가 말한대로 커피 한잔과 펜을 준비 한 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차분하게 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유언장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