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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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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밝혀두지만 나는 여행중독자지만 여행기는 절대 사읽지 않는다. 어디를 여행해라, 어디는 언제 가면 좋다, 어디는 얼마다, 하는 정보만 가능한 책이나 혹은 지극히 사적인 감상만 가득한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기억은 소유하는 개인의 기억이니까. 그 기억을 시간과 장소, 인생의 공유 없이 타인이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건 사치일테니까. 


 이 사실을 우선 밝히는 이유는, 이 여행기는 확실히 다른 여행기와 다르고, 나는 이 다름을 꽤 즐겼기 때문.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것은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어떤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이다. (...)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도피였으며,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남다른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여행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도피'라. 글쎄, 원래 여행이 그런 거 아니겠나. 현실로부터의 도피, 현실 속 나로부터의 도피. 


(...) 내가 있었던 알타이 산맥의 아름다움은 관광객의 눈에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그런 아름다움은 아니며 사진으로 전달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감동을 주는 곳도 아니다. 


 그러니까,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사실은 그게 또 다른 '일상'이라서가 아닐까. 나는 특별한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났었다. 처음 며칠은 내 눈이 담는 모든 게 다 낯설고 새로워서 '이게 정말 여행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일주일이 채 안돼 모든 게 익숙해졌다. 더이상 나는 길을 잃지 않았고 몇 달이 지나자 그 특별한 곳은 그냥 '우리 동네'가 되었다. '에이 재미없어' 하다가 문득 내가 꺠달은 것은, 이조차 여행이라는 것. 

일상이 곧 여행, 여행이 곧 일상이라는 것. 특별한 감동은 새로운 곳에서만 오는 건 아니라는 것.


 

(...) 종종 나는 거의 하루종일 유르테 안에서 혼자이기도 했다. 종종 나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순간이 있었고, 종종 내가 그들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많은 경우 나는 내 감정과 언어 안에서 오직 혼자였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으나 스텝 황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때로 황야가 앞으로 나아갔으나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 세상에서 여행기와 가장 먼 여행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리라. 


스페인 어느 작은 마을에 다리를 다쳐 일주일 정도 머문 적이 있었다. 원래 스페인이란 나라가 다들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특히 작은 마을이었기에 영어로 소통한다는 것을 기대할 순 없었다. 영어를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끼리 대화의 꽃을 피울 때 나는 멋쩍게 웃고 있어야 했고, 중간 중간에 어느 한 명이라도 나를 위해 통역을 해 주면 감사해야 했고, 그러지 않았어도 탓할 수 없었다. 한창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끊어가며 나를 위해 영어를 해주길 바랄 순 없었으니까.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들으며 한동안 앉아있다가 나는 침실로 들어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외로운 거였나? 외롭진 않았던 것 같다. 영어를 하지 않아 서운했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 여기서 나는 정말 이방인이구나' 했다. 완전한 이방인이 된다는 기분. 묘했다. 나는 그렇게, 오직 혼자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대목에 유독 마음이 갔다. 꽤 자주, 나도 오직 혼자였다. 그런데,


그래서 난 그 여행을 아직도 그리워한다. 



(...)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떤 진실을 길에서 발견했다고 쓰고 싶은 마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타인에게 들려주어야 할 만큼 감동적인 사연을 얻지도 않았다. 




이 글에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여행이란 단어는 길이나 지도, 낯선 나라, 인상 깊고 아름다운 풍광, 새로운 문물, 혹은 새로운 자신, 두근거림이나 자유, 혹은 모험이나 떠남, 대개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현대인이 얻게 되는 어떤 종류의 비일상적 체험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단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적인 꿈, 고통의 또다른 이름으로서의 꿈, 혹은 정체불명의 그리움, 슬픔과 체념으로 가득찬 발자국, 혹은 그러한 감정의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은밀하고도 슬픈 몽환과 동의어에 불과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얼굴들로 이루어진 나의 또다른 장소로 향하는 여행이자 동시에 한때 나의 육신을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돌과 쇠를 찾아가는 여행. 


소란스러운 여행기에 지친 이들에게 추천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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