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홍구.서해성.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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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는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겨레>의 에디터인 고경태 씨가 기획하고, 성공회대 교수인 한홍구 씨와 시인 서해성 씨가 한 명의 인물을 초청해 대담을 나누는, 일종의 인터뷰 북이다. 본래는 한겨레(www.hani.co.kr)에서 외부 필자들의 칼럼을 고정적으로 연재하는 'hook'의 한 코너로, 지금도 사이트를 방문하면 주 별로 진행되었던 대담을 한 편씩 읽을 수 있다.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코너는 1년간 총 50회를 진행한 뒤 올 해 5월에 끝을 맺었고 그 결과가 한 권으로 묶여서 8월에 나온 것이다. 연재되던 당시 다음 주엔 누가 나오나 기대하며 한 편 한 편씩 읽어온 터라 책을 통해 처음의 대담부터 다시 읽고 있자니 해당 대담이 진행되던 시기 사회에나 나 개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다시 떠올라 무척 즐거웠다.


'직설자' 가운데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한홍구 교수부터 소개하자. 한홍구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이수하고, 워싱턴 대학에서 일제 시대 김일성의 항일 무장 투쟁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대학원에 있을 당시 흉흉한 시국 탓에 그 말고는 현대사를 전공으로 하는 이가 적었기 때문에, 5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현대사 분야에서는 1세대, 혹은 원로로 대우받는다고 한다.


한홍구는 참여정부 때에 '국가정보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약칭 진실위원회) 민간위원회'으로 위촉되어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등을 조사하였다. 진실위원회에서도 2007년 그 결과를 책으로 발표하였지만, 더 접하기 편한 것은 그의 저서인 <대한민국史> 총 4권이다. 이 책에는 진실위원회에서 조사한 내용 뿐 아니라 그가 계속해서 흥미를 갖고 연구해 온 정치, 병영, 사학, 종교 등의 다종한 문제가 많은 자료와 함께 실려 있어 한국현대사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데에 큰 힘이 된다. 인터넷 서점에서 세트로 묶여서 비교적 큰 할인폭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꼭 구입하도록 하자.


현 정부 들어서는 학생과 시민을 상대로 하여 위의 내용들이나 시국 분석 등을 주제로 한 강의를 수 차례 진행하였고, 그 결과는 <특강>, <지금 이 순간의 역사>로 묶여서 나왔다. 특히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2009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진행되었던 강의의 강의록으로, 읽다 보면 당시의 좌절감, 분울함, 애도의 마음 등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두 권 다, 필독서다.



'직설자 2' 서해성 씨는 사실 '직설' 코너를 접하기 전까지는 시인이라는 것과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 등을 기획한 문화계 인사라는 것 정도밖에 몰랐다. 사실은 지금도 몇 차례의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짜투리 지식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한 달에 한 번씩 고정 토론 패널로 나오는 방송을 듣고 있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이 정도만 적는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imbc(www.imbc.com)의 '라디오' 코너에서 mp3 화일로 무료로 다운받아 들을 수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찾아 들어보자. 상대 패널은 보수 논객으로 이름난 전원책 변호사.  

 

 
이제 책의 내용과 구성 이야기를 해 보자. 온라인 '한홍구 - 서해성의 직설' 코너는 총 50회였지만 그 가운데에는 새로 시작하는 코너의 소개나 한 주제에 관해 한홍구와 서해성 두 사람만 대담을 나눈 경우도 있어, 실제로 인터뷰를 한 인물은 총 36명이다. 



대담의 한 편 당 분량은 대체로 12쪽 가량으로 잘 편집되어 있다. 1쪽은 편집자의 입장에서 전하는 대담의 분위기, 혹은 인터뷰이의 소개이고, 12쪽은 한홍구와 서해성이 번갈아가며 그 날의 주제와 인물에 대해 평을 쓴다. 예습하고 복습하게 만드는, 좋은 구성이다.


본문에 해당하는 10쪽에는 분량에 따라 1쪽짜리 전면 사진이 한 장, 혹은 두 장이 들어가고, 전체의 내용은 약 네 개 정도의 소주제로 분류된다. 주제에는 '4대강'이나 '담뱃세', '6자회담' 등 개별 이슈인 경우도 있고 인터뷰이의 인생 전체를 회고하는 경우도 있다.  



코너가 진행되던 때에는 그 주에 화제가 되었던 인물, 혹은 당시 섭외가 가능한 인물 위주로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책으로 묶이면서는 인물의 성격에 따라 크게 4부로 나뉘어 재편집되었다.



1부 '통찰 혹은 구라'에는 사상가, 혹은 광대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여덟 명이 소개되었다. 직업 면으로만 보자면 '먹물/딴따라'로 구분될지 몰라도 면면이 살펴보면 모두 통찰과 구라를 겸장한 고수들이다. 돌아가신 뒤에 진행된 가상 인터뷰의 주인공 리영희 교수를 비롯해, 고은, 유홍준, 백기완, 김제동, 김영희, 류승완, 진중권이 이 챕터로 분류되었다.


특히 눈이 가는 것은 '리영희-백기완' 세대, '유홍준-한홍구-서해성' 세대, '김제동 - 류승완 - 진중권' 세대로 이어지는 '구라의 계보'다. 백기완 선생은 예외적인 존재이지만, 대체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글보다는 말로, 말보다는 이미지로,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감성보다는 재미로 재정의 되어가는 '구라의 속성'을 목도할 수 있다. 경천동지할 입심의 '구라'들이 별안간 나타나 시대의 흐름을 바꾸었다기보다는, 바뀐 시대의 흐름이 그 품새에 어울리는 '구라'들을 토해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2부 '분노의 무늬'에서는 특히 현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에 주목해 해당 주제의 '권위자'를 호출한다. MB 정부에서 시위를 진압할 때나 인터넷, 방송을 검열할 때 뻔질나게 써먹은 '법치주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등판한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청계천 사업을 주도했으나 4대강 사업에는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된 최열 환경재단 대표,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로 '정의'를 꼽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등이 그 예이다. 



3부 '시대의 생각들'의 목차를 보면, FTA나 구제역, 담뱃세 인하 등의 당기적 이슈들이 있어 소제목만으로는 2부와 큰 변별력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용을 읽어보면 개별 이슈에 집중하던 2부에 비해 3부는 환경, 복지, 언론 등 폭넓은 대주제에 헌신해 온 '인물'들의 이력, 신념, 주장 등을 소개하는 데에 더 힘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TA의 관해 지금도 꾸준히 글을 올려 그 실체를 알리고자 노력하는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이해영 교수의 글은 특히 이 대통령이 방미한 뒤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미 FTA에 관해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 '빨갱이 신부'라고까지 불리워 가며 삼성 비자금 폭로, 촛불집회, 용산참사 거리미사, 4대강 공사 반대 기도회의 최전선에 섰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총무 김인국 신부, <시사투나잇>, <추적 60분>의 프로듀서를 거쳐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 취임해 종편과 싸우고 있는 이강택 PD의 일갈이 실려 있다. 어제인 10월 26일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어 오늘 첫 출근을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온갖문제연구소장 원순 씨'로 출연한다.



4부 '그들의 변명, 그들의 희망'은 정치인을 묶어 놓은 챕터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친노 세력들이 참여 정부의 공과에 대한 성찰 없이 '노무현의 이름을 빌려' 부활하였던 세태에 대해 ''놈현' 관장사를 멈춰라'라고 하였다가 유시민 전 장관의 <한겨레>절독 선언과 <한겨레> 편집국장의 사과문 게시까지 불러일으켰던 천정배 민주당 최고의원과의 인터뷰도 여기에 실려있다. 한홍구와 서해성은 이후 수 차례의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자신들 또한 노무현의 서거에 대해 누구보다 슬퍼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노무현 정신'의 진정한 계승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적 입지의 확립을 위해 그의 이름을 빌리는 이들에게 분노했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나왔다고 밝혔다. 한 평론가는 이 사태에 대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과 노무현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 간의 싸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직설> 책 전체는 대부분 시민 운동가나 사상가 등 '왼쪽'의 사람들을 주로 소개했는데, 이 챕터에서는 김성식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의원,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 위원장과의 대담이 실려 있다. 세 명 모두 '저쪽'에서는 '비주류'이거나 '주류였던', 그리고 '비교적 말이 통하는', 편이라고 평가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오가는 말에 날은 분명히 서 있다. 특히 영원한 독고다이 홍준표나 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에게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정두언에 비해 한나라당의 정책통으로 통하는 김성식 의원과의 대담에서는 '눈꺼풀은 파르르 떨리고'나 '얼굴은 시뻘개'지는 지경까지 갔다고 한다.


그 외의 면면은 강기갑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 김두관 경남지사, 박지원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정치인들의 언술이니만큼 그 수사는 1부 - 3부의 인사들의 그것만큼 명쾌하고 담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타 언론들과의 인터뷰들보다는 훨씬 날것이다.




총평하자.


장점 하나. 시민운동계, 노동운동계, 사상계 등에 대해 한 권의 분량에서 이 정도로 널찍하게 알아둘 수 있는 것은 사회공부 입문자에게 축복이다. 그 이상은 검색이나 추천서적을 통해 해결할 일이다.


장점 둘. 사학자답게 면전을 정곡으로 찌르는 한홍구는 담백하고 칼칼한 평양 백김치 같고, 시인답게 구비구비 에둘러 뒤통수를 후려치는 서해성은 젓갈이 듬뿍 들어간 남도 갓김치 같다. 어떤 인터뷰이가 들어와도, 터줏대감인 황금콤비는 나름의 가락을 만들어낸다. 듣다 보면, 한 편은 금방 끝난다.


장점 셋. 온라인으로 한 편 한 편 넘겨가며 클릭하다가 눈 버리는 비용이나, 이 코너만을 위해 한겨레를 매 번 사 보는 구독료가 얼마일지를 세어보면, 이백 장 남짓의 사회과학 서적도 만오천 원을 쉽게 뛰어넘는 요즘 500쪽이 넘는 이 책이 정가 만팔천 원인 것은 재능기부의 차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합쳐서, 필독서. 두 권 사서 나눠주고 세 권 사서 쌓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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