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그저 내일을믿었다. 그들은 이 마을의 끝을 상상하지 않았다. - P299

지수는 덫에 걸린 기분을 느꼈다. 모스바나는더스트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오랜시간 가꾸어온 어떤 가능성을 모두 집어삼키고 있었다. 간신히죽음을 피해 가면, 그곳에는 또다른 예정된 멸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저 역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모스바나는 원래 그 자체로 더스트를 닮은 생물로, 끊임없이 증식하고 공격하고 침투하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동시에 유전적 다양성이 없기에 단일 바이러스 하나에도 멸종에 이를 수 있는 취약한 생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모스바나가 더스트와 같이 역사의편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모스바나는 공존과 유전적 다양성을 습득하고 더스트 시대의 흔적을 자신을 지우는 것으로 살아남았지요. - P366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 P365

저는 그렇게 한 사람의 평생을 사로잡는 기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당신의 마음이 실제로 전부 유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무엇도 지수 씨의 잘못을 해명해줄 수는 없어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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