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하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 틈에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의 수치스러운 일을 겪는다. 못 견딜 정도로 수치스러울 때는 그 장소를 떠난 뒤 돌아가지 않는데, 그런 일은 물론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음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면 그 동네에도 아카시아나무가 많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카시아가 단 한 그루도 없는 동네에 살게 되더라도 나는 별 불편 없이 잘 적응해 갈 것이다.
 나는 여전하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밤이 너무 조용할 때 진주에 관한 기사를 찾아본다. 어딘가에서 진주를 찾았다는 소식을 말이다. 유골이라도 찾아냈다는 소식을 밤새, 당시의 모든 키워드를 동원해서 찾아다닌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고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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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지 않기 위해 빵을 떼어 길가에 버리며 걸었다는 동화 속의 남매처럼, 민주는 자신의 꿈의 디테일들을 하나씩 버리며 걸어왔지만, 자신이 삶의 어디쯤 도착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끝으로 향하는지는 더욱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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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선생은 훌륭한 직원이다. 얼굴은 고상하게 예쁘면서, 옷차림은 단정하게 귀엽고, 성격도 싹싹하고, 센스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와 메뉴, 샷 수까지 기억했다가 사오곤 했다. 직원들에게도, 환자들에게도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 병원 분위기를 한결 밝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급하게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리퍼를 결정한 환자보다 상담을 종결한 환자가 더 많다. 병원 입장에서는 고객을 잃은 것이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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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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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들이 언제나 같은 얼굴, 같은 동작으로,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주 제 눈에는 그들이 단 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사람, 혹은 같은 사람들은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고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높은 목표가 하나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제가 그들처럼 된다면 쇠창살이 열릴 거라고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처럼 성취가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은 하지 않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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