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파버 을유세계문학전집 113
막스 프리슈 지음, 정미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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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세상 모든 것에 신기할 것이 없고, 항상 철저하고 꼼꼼해 기분에 따라 계획을 변경한 적이 없는 주인공 발터 파버는 비행 도중 갑자기 겪게 된 불시착에도 수학적 확률로 생각해 개연성 없어보이는 일을 경험 가능한 사실로 풀어내고자 한다. 
그러다 관심 없고 귀찮게 느껴지던 옆 자리 승객이 알고보니 친구의 동생이었고,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을 해놓고선 돌아가지 않는 등 평소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결정들을 하게 된다. 왜 그랬는지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된 주인공의 우연한 선택과 우연한 사건들은 이야기가 전개되며 거듭 생기게 된다. 운명을 믿지 않던 파버에게 오히려 운명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결과가 다가온다.

시니컬하고 모든 방면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주인공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그는 자기가 고집하던 계획적이고 이성적이고 기술적인 관점과는 모순되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에 묘사된 주인공의 성격과 정반대인 나로서는 주인공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대목에서는 어이없었고, 일기처럼 서술되는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표현되는 그의 행동들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겉과 속이 같으면 어디 덧나나 그는 사회성도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다.

현대의 내 관점에서 캐릭터를 바라봐서 그런 것도 없잖아 있겠지만 감안하더라도.. 할많하않! 스포 없이 바로 책 읽은 나로서는 중후반부 내용은 다소 충격이었다. 비판의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작가의 메시지를 세게 느낄 수 있던 것. 오만하고 이기적인 도구적 인간은 운명과 자연 앞에 굴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 아래는 조금의 스포를 포함 ! )

주인공이 왜 한나랑 결혼을 못했는지도 명백하다. 임신했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는데 거기다 "확실해?" "병원 가봤어?" 그리고 일자리 얘기만 늘어놓는 남자라니. "결혼할래, 안할래?"는 최악의 프로포즈가 아닌가? 게다가 사랑해서 생긴 아이에게 우리 아이가 아니라 '네 아이'라고 말하는 남자를 떠난 건 한나가 현명했다. 그리고 나중에도.. 한나는 아주 대인배이자 가장 안타까운 캐릭터다.

인상깊었던 게 주인공이 자기가 ‘보는’ 것만 믿고 의존했는데 자기가 찍었던 영상을 다시 보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기 시선조차 자기 생각과 다르단 걸 깨닫는 장면이다. 마지막 비행에서도 소설 첫 부분과는 달리 자연을 보면서 느끼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참 대비가 되었다.

잘 안읽힐 줄 알았는데 영화처럼 분위기와 장면을 떠올리며 읽으니 생각보다 몰입해서 잘 읽었던 소설. 책 물성도 마음에 들어서 을유세계문학전집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졌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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