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합치 - 예술과 실존의 근원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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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합치가 진정한 실존을 향하는 길이라는 관점은, 어려운 말이지만 그 메시지를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내가 여태껏 생각해왔던 삶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많이 변화하면서 살아온 아직은 짧은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성장하던 순간들이 대부분이라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멈춰있던 상황에도 나는 변화를 원했던 것 같다. 그게 그 순간에 느껴지는 안정감도 물론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그 상태 그대로 있는 건 원하지 않고 있었다. 뭐, 내가 나이가 들고 생각이 바뀌면 그래도 안정적인 삶을 더 우선적으로 원하게 될 수도 있지만 또 그 '안정적인 삶'이란 게 뭘지 생각해보면 실현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변화를 아주 최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안정적인 삶을 누리면서도 불안해했다.

안정된 삶을 불안해 하는 것? 맞아, 난 그런 편이었지. 굳이 돈과 관련짓지 않더라도 행복하고 고요한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나는 불안해했다. 그래서 일부러 균열을 만들어 내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그게 안되면 새로운 활동이라도 하도록 만들어왔다. 나름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엔 그 균열을 스스로 만들어낸 데에 대한, 그리고 그 새로움을 겪어낸 데에 대한 성장이 부정적 스트레스들을 보상해줬다. 지금도 나는 탈-합치를 개척해내는 과정 속에 있는데, 이 과정을 겪은 후에 얻을 성과를 자주 생각해본다. 내가 여태껏 겪어왔던 것보다 어쩌면 가장 긴 여정이 될 수도 있는 일. 불확실성 속에서 얼핏 보이는 이상적인 미래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일단 현재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항상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내 실존을 표출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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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삶, 관습, 사유에 대한) 탈합치를 실행하는 것(탈합치를 무릅쓰는 것)은 독립성을 드러내거나 더 공격적으로 충격을 주고자 한다기보다 실존을 출현하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p.39 삶에서 합치가 불가능하다면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절망해야 하는가? 혹은 산다는 것이야말로 도리어 항상 탈합치하려는 역량이 아니겠는가?

p.59 삶을 실질적으로 전개할 수 있으려면 삶에서 탈합치해야 하며, 바로 이것이 '삶'의 고유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 서포터즈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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