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지음, 김건아 옮김 / 휴먼컬처아리랑 / 2026년 3월
평점 :
엄청 유명한 명작이고, 가장 최근 출간된 번역본이라서 기대하면서 구매했다. 하지만 분야를 불문하고, 책이라는 것을 사면서 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생각이 든 적은 생전 처음이다.
이 책(정확히는 번역본)을 절대 사지 말아야 하는 4가지 이유이다.
1. 처참한 번역 퀄리티
과장 없이, 수준 떨어지는 ai에게 번역을 맡긴 건지 진지하게 의심할 정도로 번역의 수준이 처참하다. 두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눌 때 난데없이 존댓말을 쓰다가 반말을 쓰다가 하면서 독자를 당황시키는 일은 예사고, 문단 나눔도 일관성 없이 뒤죽박죽이여서 가독성도 떨어지며, 어느 등장인물이 어느 대사를 하는 건지도 파악하기가 힘들다.
ai 의심을 증폭시키는 결정적인 것이, 등장인물들의 영어 이름의 음차가 뒤죽박죽이다. '드러믈'이라는 이름을 나중에는 '드럼블', '드럼멀'이라고 쓰질 않나, '웸믹'을 나중 가서 '웸윅'이라고 쓰는 등, 자격 있는 인간 번역가가 직접 번역했다고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2. 무수한 오탈자
말 그대로 오탈자가 어마무시하게 많다. 오탈자도 정말 다양하게 틀려놓아서, 각종 문장부호를 생략해놓아서 어떤 대사는 따옴표가 하나밖에 없다던가, 기초적인 맞춤법이 틀리는 등 심각하다. ai가 번역했다면 적어도 맞춤법은 틀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얼마나 수준 낮은 ai를 쓴 건지, 아니면 얼마나 형편없는 번역가가 번역한 건지 궁금해진다.
3. 내용의 생략
나름 600페이지나 되는 판본이지만, 원본에서 생략된 표현들이나 내용들이 많다. 찰스 디킨스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필력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분명히 실망감을 줄만큼 밋밋한 문장들과 표현들로 꽉찬 600페이지를 힘겹게 읽느니, 차라리 100~200페이지를 더 읽더라도 원작의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다른 출판사의 판본을 읽는 편이 훨씬 낫다.
4. 활자의 인쇄 상태
실물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처음 눈에 들어오는 글자들의 인쇄 상태가 처참했다. 활자의 인쇄가 미세하게 번져 있었다. 그동안 읽은 다른 모든 책들의 활자는 비유하자면 유튜브 1080p였다면, 이 책은 480p정도로 인쇄가 이상하다. 내용을 읽는 데에 지장은 없었지만, 활자도 깔끔하게 인쇄해내지 못하고, 이를 검수하는 성의도 없는 출판사의 책을 굳이 구매할 이유는 없다.
내가 이 책으로부터 얻은 이점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 명작의 아우라는 형편없는 번역과 인쇄 퀄리티 따위로 가려지지 않았다. 이딴 쓰레기같은 번역본으로 읽어도 「위대한 유산」의 매력은 일정 부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만한 명작을 집필한 찰스 디킨스에 대한 존경심이 한층 더 강해졌다.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된 번역본으로 「위대한 유산」을 당연히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이번 경험을 통해, 책을 고를 때 책표지 디자인에 비중을 두는 초보 독서가에서, 내용의 충실함의 비중을 더 높게 두는 더 성숙한 독서가가 될 수 있었다. "예쁘니까 이 책 사야지"하는 기존의 초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한층 더 성장하는 것은, 어지간히 끔찍하고 처참한 수준의 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번역본을 구매하고자 하는 분들은, 괜히 비싼 돈 들여서 나와 같은 교훈을 터득하지 말고, 이 후기를 통해서 공짜 교훈을 얻어가시면 좋겠다. 이 책의 출간은 말 그대로 사기범죄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