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저자인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책 이름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뜨끈뜨끈한 신작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에 대한 작가 에쿠니 가오리 본인의 생각을 쓴 산문적인 글도 있고 그 전에 다른 잡지나 신문에 기고했던 짧은 글이나 소설을 담은 책이다. 이전에 기고되었던 글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완전한 신작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래도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옛날 글도 볼 수 있어서 꽤 신선했다.


자신과 자신 이외의 것이 이어질 때, 세계는 갑자기 열립니다. 이건 정말이에요.

그러니 그전까지는 가만히 있는 것도 괜찮아요. 다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몸의 감각이 무뎌지지않도록, 비가 내리면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고양이털과 개털의 감촉을 구별할 수 있도록. 암염과 천일염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스스로 느낄 것. p.38



소설을 쓰는 동안은, 나는 '전투를 한다.'하고밖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으로 지내는데,

그런데, 무엇과? 그건 정말 수수께끼다.

p.40

중간 중간 굉장히 번역체적인 글들이 있다. 아, 물론 일본책을 번역한 책이니까 맞는 말이긴한데... 뭐랄까... 한자어라던가 일본어의 언어유희같은 소재도 껴있고 글 자체에 쉼표도 의외로 엄청 많아서 예상치 못했곳에서 뜬금없이 한박자씩 쉬었다.

그럴때면 굉장히 원어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일본어를 못하는 관계로 패스....ㅋㅋㅋㅋㅋ



책을 읽는 데 몰두한 나머지, 그곳이 방이든 역의 벤치이든 전철 안이든 아무 소리도 타인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자신이 거기에 있으면서 있지 않은 것이 되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행복한 일이죠.

...

책에 몰두하다 보니 해가 지는 것도 모르다가, 알고보니 몹시 어두운 방 안에서 활자를 더듬고 있었을 때, 나는 자신이 오랜 시간 거기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오랜 시간 거기에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p.97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표절의 시비가 있을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의 작품은 잘 안본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책을 쓰는 것 만큼이나 많이 읽는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읽을때는 온전히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읽는다는 것도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제목만 봤을때는 아! 에쿠니 가오리도 집순이구나! 했는데 집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단순한 공간의 구분이 아니라 책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구분을 의미한다. 올해는 어쩌다보니 책을 정말 많이 읽고있긴한데 작가가 말하는 것 처럼 그렇게 온전히 책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곳으로 떠나는 일이고, 떠나고 나면 현실은 비어 버립니다. 누군가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아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나도 쓰고싶다고 생각합니다. p.129

마지막 챕터인 <그 주변>이야기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모습이 묻어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볼 수 있다. 어린시절의 이야기, 음식 이야기, 자신의 딸 이야기... 뭔가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미지보다는 그냥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주머니 같은 느낌이랄까...? 갑자기 에쿠니 가오리가 엄청 친근해졌다.

수업 중인데 치사는 수업을 듣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리라. 그저 멍하게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세계를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p.210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냉정과 열정 사이>를 분명 읽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갑자기 에쿠니 가오리 책 정주행을 시작해야할 것 같은 기분ㅋㅋㅋ 이 책의 "읽기" 챕터에서 작가는 다양한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는데 기회가 되면 에쿠니 가오리가 추천해주는 책들도 한번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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