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 14년 차 방송작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김선영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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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방송작가일은 14년이나 하고 여전히 글을 쓰는 작가.

중간에 콘텐츠 제작으로 빠지긴했지만 어쨌든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다른사람을 위해 글을 썼다니

비단 방송작가여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도 존경스럽다

그렇게 남의 글을 썼던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글을 쓰면서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지긋지긋해서 그만뒀을텐데 그럼에도 좋은 추억들이 많아 14년간의 방송생활을 책에 담았다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짧은 화면들을 넘기며 시청자를 이해시켜야 하기때문에

자막이라던가 나레이션이 호흡이 짧고 쉽게 쓰여져서 바로바로 이해가되는데 그런 글을 항상 써오던 작가여서 그런지

글 자체도 쉽고 무엇보다 에피소드들이 하나하나 너무 재미있다

사실 나는 동종업계 경험이 있다보니까 격하게 공감하며 쭉쭉 읽었지만

이 업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신선한 충격으로 내용에 더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2007년도, 작가가 처음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었던 때는 막내작가의 기본 월급이 평균 80만원이었다고 한다

13년 전이긴 하지만.... 아... 진짜 그거받고 어떻게 살아???

(2007년 최저 시급 3480원)

지금은 상암동으로 많이 이전했지만 그때당시만해도 방송의 중심은 여의도였고

지방에서 올라와서 자취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월세내고나면 교통비밖에 안남는 수준인 월급인것이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일을 배우는 입장이라며, 그래도 하고싶었던 일이었고 엔딩크레딧에 내이름 한줄 올라가는 걸 보며

보람있지않냐며 열정페이로 버텼던 때였다

지금은 그나마 최저임금은 챙겨준다고 하는데 사실 말이 최저임금이지

일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미치는 금액이다

최저시급 수준의 페이를 받는데 누가 야근까지 하고 싶겠는가. 결국은 돌고 돌아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시스템에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돌아갈 때까지 막내작가는 점점 더 사라질 것이고, 메인작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p.94




나는 결국 인정했다, 정의감만으로 일할 수 없다는것을.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사람을 통과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곱게 정제된 '방송용'내용만 텔레비전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하나씩 포기하고 타협해야 할 일이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이며, 내가 그 벽과 싸울 만큼 단단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교양작가들은 실컷 일을 가르쳐 놓으면 막내작가들이 '예능한다며'떠나 버리는 현상에 지쳐 있었다. 교양프로그램은 보는 사람에게도 만드는 사람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더는 후배 작가에게 마음을 쏟고 배신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

새로 온 친구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빠른 수순이었다.

"걔는 어차피 방송 일 오래 못할 애였어, 하루 빨리 그만둔 게 다행이지 뭐."

자책감을 덜기 위해 서브작가들은 한 목소리로 그녀를 탓했다. 나 역시 동조하며 '요즘 애들의 나약함'을 논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는 못난 선배들을 쏙 빼닮아 가고 있었다.

p.179


내가 잠깐 여의도에서 일했을때는 2015년이었는데 최저임금이 조금 올랐다는 걸 제외하면

2007년에 막내로 들어간 작가가 겪었던 불합리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사실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더 많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실제로 겪어봐서 그런지 이렇게 조금 무게감있는 얘기를 할 때 더 공감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일도하면서 연예인 볼 수 있어서 좋겠다느니,

방송내용이 전부인줄 알고 재미있게 촬영한다느니 할 수 있지만 사실 그세계는 정말 을끼리의 피터지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게다가 요즘은 동영상플렛폼이 다양해지면서 사실 TV는 나도 잘 안보는데 오죽하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됐던 페이지로 서평을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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