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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미셸 오바마의 성장과 오바마를 만나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퇴임까지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백악관에서의 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미셸 오바마의 가식적이지 않은 가치관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가?
별점: ★★★★☆
내가 되다
우리는 부모님이 담뱃불을 붙이면 일부러 콜록거렸고, 종종 담배 심부름에 반항했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은 선반에 놓인 새 뉴포트 담뱃갑을 뜯어서 그 속의 담배들을 줄기콩 분지르듯이 싱크대에서 똑똑 분질렀다. 담배 끄트머리에 일일이 핫소스를 묻혀서 도로 넣어두기도 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폐암에 대해 설교하면서, 학교 보건 시간에 시청한 영상 속 끔찍한 장면을 중계했다. 흡연자의 폐는 숯처럼 메마르고 새카맸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의 죽음이요, 몸속에 죽음을 품고 사는 셈이었다. 반면 담배 연기에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폐는 발그레한 분홍색이었다. 이토록 명백한 대비가 또 어딨나 싶어서, 우리는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연은 좋고, 흡연은 나쁘다. 금연은 건강이고, 흡연은 질병이다.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온 바가 바로 그런 것이었는데도, 부모님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담배를 끊었다.
우리가 되다
처음에 버락은 부부 상담을 내키지 않아 했다. 그는 복잡한 문제를 맞닥뜨리면 직접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낯선 사람 앞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좀 드라마 같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불편한 일이었다.
상담사는—우드처치 박사라고 부르자—부드러운 말투의 백인 남성으로, 좋은 대학을 나왔고 늘 면바지를 입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버락과 내 이야기를 다 들어본 뒤 즉각 내 불만이 모두 타당하다고 인정해줄 거라 예상했다. 내 입장에서야 내 불만은 전부 절대적으로 타당했으니까. 모르면 몰라도 버락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겪어보니, 상담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드처치 박사는 누구의 불만도 승인해주지 않았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대목에서 어느 쪽이 옳다고 표를 던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대신 공감하며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고, 우리가 각자 감정의 미로에서 헤어나도록 도왔으며, 개인의 상처 때문에 자동으로 상대에게 무기를 휘두르지 않도록 타일렀다. 우리가 너무 변호사처럼 따지고 들면 주의를 주었고, 세심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이유를 생각해보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이야기하다 보니 서서히 매듭이 풀렸다. 상담실을 나설 때마다 버락과 나는 서로에게 좀 더 연결된 기분이었다.
그 이상이 되다
백악관에 텃밭을 일구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활동의 시작이 되기를 바랐다. 버락의 행정부는 더 많은 미국인이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집중했는데, 텃밭은 그것과 연관된 건강한 생활 방식에 관해서도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 또한 텃밭은 내가 퍼스트레이디로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볼 시운전 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텃밭은 일종의 야외 교실, 아이들이 먹거리를 기르는 일에 관해서 배울 수 있는 장소였다. 게다가 자연에 관한 일일뿐 정치와는 무관해 보였고, 내가 부삽을 쥔 여성의 모습으로 수행하는 무해하고 순수한 활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우리의 행동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칠까 염려하여 노상 대중의 ‘시선’을 들먹이는 웨스트윙 고문들도 달가워할 것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텃밭을 통해서 사람들과, 특히 각급 학교 및 부모들과 영양에 관한 대화를 나눠볼 계획이었다. 그 대화가 더 나아가서 오늘날 식품의 생산방식, 성분표 기입 방식, 마케팅 방식을 살펴보고 그 현실이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진행되면 좋을 듯했다. 그리고 백악관에서 그런 주제를 언급하는 것은 거대 식품 및 음료 회사들이 수십 년간 추구해온 사업 방식에 암묵적으로 도전하는 셈일 터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단호히 맞서야 하지만 그러느라고 나까지 그 아이의 수준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인즉, 우리는 이제 그런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약자를 비하하고 전쟁 포로를 조롱하는 사람, 내뱉는 거의 모든 말이 국가의 품위를 해치는 사람. 나는 미국인들이 말의 중요성을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TV에서 들리는 혐오의 언어가 미국의 진정한 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그에 반대하여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사람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품위였다. 품위는 내 가족이 여러 세대 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었고, 우리가 나라 전체로도 그 중요한 가치에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품위는 늘 우리를 버티게 해주었다. 그것은 선택이고, 늘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지만, 내가 살면서 만난 존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일매일 몇 번이고 그런 선택을 내렸다. 그 문제에 관해서 버락과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모토가 있었는데, 그 말을 나는 그날 밤 무대에서 들려주었다.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에필로그
나는 어쩌다 그만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밟게 된 평범한 여성이다. 그런 내가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바라는 바는 이로써 다른 이야기와 다른 목소리가 들릴 공간이 더 넓어졌으면,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