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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고해 - 스스로에게 건네는 마지막 고백
신창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2월
평점 :
왕의 남자 라는 영화가 있었다. 정조의 남자가 있다면 누굴까? 나는 정약용이라고 생각한다. 방대한 서적를 쓰고 수원화성 거중기를 개발하고 업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 업적은 바로 정조의 지지에서 나왔으면 물론이다. 그런 정약용의 유적지는 남양주에 있다. 남양주에 갔을때 자찬 묘비명이 굉장히 특이 하다고 느꼈다. 묘지명은 보통 후손이나 후학이 써주기 때문이다.
묘지명은 잘못된 한자가 있다고 하긴하는데 묘지명 세부 내용은 재밌게 읽었다. 개인의 히스토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집안은 외증조부 윤두서로 해남윤씨 고산 윤선도의 손자가 된다. 부인은 풍산홍씨 아들로는 학연. 학유이다. 무덤의 장소 방향까지 다 유언으로 남기다니 대단한 분이다.
평생에 걸쳐 익히고 몸에 새기고자 한 것을 밝히려고 한다. 육경과 사서를 가져와 깊이 잠기어 탐구하였다.육경은 유학의 핵심이자 기본인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춘추를 가리킨다. 사서는 대학.논어 맹자. 중용이다.
다산이 아니라는 책의 제목은 도발적이었다. 다산 정약용으로 입에 익어 있는데 말이다. 대신 여유당을 강조하고 있다. 여유당(與猶堂)은 사유의 흔적이라고 한다. 정약용 사유의 흔적은 읽은 책을 통해서 쓴 책으로 알 수 있다. 사서와 육경을 읽고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인 일표 이서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반전은 당대에는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책에 있는 이 대목이 나는 제일 와닿았다. 조선사회는 유교식 상례와 제례가 엄격한 사회라는 말이다. 정약용은 그러한 시대에 천주교를 접하고 앞서나갔다. 단지 책을 많이 쓰고 목민관이 아니라 직관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고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