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와의 조우를 갈망하는 그 자체가 고도의 인지 능력이라는 말
대화가 통하지않으니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광대한 우주에서 고독한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고, 타자와의 조우를 갈망하는 그 자체가 고도의 자기 인지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일까. 무리인들은 아직 그 정도의 철학과 자아 개념을 발명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 P73
약 먹는게 무조건 나약하다는 건 아닌데참 슬프네
엄마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는데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이런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엄마나 나나 서로에 대해 많은 걸 포기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다시 이렇게 부딪치게 된 걸까.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결국 엄마를 공격하게 되는 패턴을 반복하고야 말았다. 상처 주고 싶지 않았지만 끝내자신을 꺾지 않고 나를 비난하는 엄마를 견딜 힘이 내게는 없었다. - P191
두려움이란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뜨렸다. 반가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치받치던 두려움이 그제야 몸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이란 신기한 감정이었다. 사라지는 순간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니까. 할머니는 자신이 단 한 번도 새비 아주머니와 희자가 대구까지 무사히 왔으리라고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희망이 꺾였을 때의 충격을 감당할수 없을 것 같아서 작은 희망까지도 모두 버린 채로 피난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다가 일어나서회자를 끌어안았다. 할머니의 품에 안긴 희자도 울기 시작했다. - P179
난 두렵기만 할거같은데대단하다
희진은 이 행성이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궁금해졌다. - P40
어린 아이가 다치면서어른아이가 되어가는 과정
나는 학교에 들어갔고 한글과 숫자를 배웠고 시계를 읽는 법을 배웠고 죽은 사람은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거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여기에 존재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배웠다. 나는 엄마에게 죽은 언니와 놀았다고 말하던 날을 떠올렸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은 사람 앞에서 나의 진실을 떠벌리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엄마의 고통 앞에서 나의 진실은 가치가 없었다. 어떤경우에도 엄마의 불행에 나의 불행을 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거짓말을 했다. 괜찮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잘 자고 잘 먹고 있다고, 문제가 없다고, 나는 언제나 잘 웃는 아이였고, 자라서는 잘 웃는어른이 됐다.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 때도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