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이런 류의 책을 읽으려면 최소한 고전 몇십권과 철학과 문학분야등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위대한 문필가를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이 두려운 느낌은 뭘까. 

사실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수많은 '걸작'과 걸작을 쓴 작가들의 명표를 보면서 저자의 박식함과 광적인 독서량에 놀라기도 했지만 지루할 법도 한 책의 흐름을 잡아준 건 마치 독자와 대화하듯 툭툭 늘어놓는 그의 말투였다. 위트 가득한 화려한 비유와 감탄사를 섞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작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때론 날카로운 비평과 비수같은 냉소적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또 걸작은 XX다 (날아가는 화살이다. 영원한 현재다. 제국주의자다등등)와 같은 단정적이고 거침없는 표현의 퍼레이드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시선으로 걸작을 생각하게 한다. 걸작은 탄생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가 등장 후엔 당연한 형식과 기준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꼭 위대한 문필가만이 걸작의 주인이 되란 법도 없으며 걸작은 그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숙제가 된다.



걸작을 쓰고 나서 또 다른 걸작을 쓰는 것은 거의 영웅적인 업적이다. 지극히 어렵기 때문만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다. - p.185



창작의 고통을 잘 표현한 위의 문장은 걸작을 배출한 작가가 계속해서 그 이름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로서의 애환 또한 간과하기 쉽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치 칼의 숲을 지나는 것과 같다는 걸작의 제조법엔 이렇다 할 모델도 표준화된 메뉴얼도 없다. 하지만 걸작을 향한 모방은 오랜시간 계속되어 왔다. 걸작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뜻밖의 탄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언제나 젊음을 유지한다. 하나의 작품이 걸작이 된다는 편견은 버려라. 단 한 문장이 당대의 작품들 속에서 긴 명맥을 유지하는 사례도 많다. 한 때는 노동과 힘든 작업에 걸작이라는 명칭이 붙었다면 이제는 예술작품에 당연히 어울리게 된 고귀한 걸작이란 두 글자. 그 의미는 장인이나 거장의 손을 거쳐 마침내 탄생하는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걸작이 아무나 만들거나 쓸 수 없는 것이 되버렸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비밀스런 자신만의 걸작을 품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 말하는 저자는 지식수준과 계급, 성별에 따른 눈높이 걸작을 제시한다. 또한 그것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것 역시 독자와 비평가, 현학자외에 작가 본인들의 몫이라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지금껏 나에게 걸작이란 지루하고 어려운 심오한 가르침이 담긴 그릇과도 같았다. 다가가기 겁나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난해한 단어들로 점철된 덩어리. 그래서 <생애 한번은 봐야 할 고전 리스트>같은 것에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실제로 걸작은 작가의 사후에 빛을 보는 경우가 많고 그렇더라도 일반인들이 주로 보는 책은 아닌 경우가 많다. 흔히 '허세용'으로 보여지는 걸작들이 현대인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걸작은 절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이 한번은 들어봄 직한 책이다. - p.56



그렇다. 걸작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입에서 입으로 두루 회자되는 책이다. 오죽했으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서 마치 읽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니 예의 문장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이같은 유명한 걸작들은 읽을수록 독자들을 더 목마르고 원하게 한다. 문학은 보다 많은 것을 구원한다. 하지만 모든 것 즉, 우리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다만 때론 혁명보다 힘이 있는 걸작은 세상을 순식간에 뒤바꾸고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현실을 개탄한다.



프루스트를 읽으면 프루스트가 된다. 셰익스피어를 읽으면 셰익스피어가 되고 푸시킨을 읽으면 푸시킨이 된다. 그들의 인물이 되고 그들의 배경이 되고 그들의 감정이 되며 그들이 된다. - p.202



장 콕토의 말처럼 걸작은 그것을 보고 듣고 읽는 이를 걸작으로 변모시키는 특성이 있다. 걸작을 가까이 하며 말 그대로 걸작인생을 사는 것. 이것이 영원과 불멸을 상징하는 걸작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덧붙이고 있다. 오늘도 걸작은 세상의 부조리와 죽음에 대한 진지한 반항을 대표해서 누가 뭐라든 여전히 제 갈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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