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지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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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옛날 80년대에서 90년대 초 '국딩'이던 내게 점빵이란 곳은, 세 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50원짜리 오락기를 한 켠에 둔 없는 거 빼곤 다 있는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였다. 생각해 보면 오락실, 완구점, 식료품점, 부식가게까지 겸한 나름의 멀티스토어였던 그 자리를 지금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저마다의 간판을 달고 깨끗한 인테리어와 발랄한 분위기로 무장한 편의점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편의점 인구 대비 밀집도는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를 자랑하는 수준으로, 그 발상지인 미국에서 건너와 일본을 거쳐 상륙했던 1980년대부터 급상승가도를 타며 현재도 멈출 줄 모르는 개점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편의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 대리석으로 된 바닥과 종업원의 기계적인 인사, 협소한 공간이지만 거의 모든 생필품과 서비스를 구비하고 있는 완벽한 장소라는 것이다. 이렇게 편리하고 접근성이 용이한 편의점이 한편으론 거래 관계에 종속된 모두를 감시하고 최근 예능프로나 개그코드의 소재로 사용되는 '갑을관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좀처럼 입밖에 내기 껄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일단 일반 슈퍼와는 다른 몇가지가 눈과 피부로 느껴진다. 최소한의 대화로 물건 구입이 이루어지는 쿨한 손님과 알바생, 그리고 상품들이 일렬종대 앞을 보고 구매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한 정갈함은 매대에 내팽개쳐져 있는 다른 가게의 그것들과 확실히 구분된다. 사실 편의점의 상품 배치와 구성, 재고관리, 직원교육등은 그 수익 증대를 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치밀하게 계획되어지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이다. 냉장시설로 대변되는 신선함과 점차적으로 더해진 은행, 우편, 복지, 치안, 금은방, 복지센터의 기능부터 고차적인 상품 취급까지 이러한 모든 서비스와 생활 집결지의 장소라는 점이, 편의점이 다른 유통업체들과 일렬 선상에 있을 때 선택되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편의점은 24시간 오픈이라는 강점을 무기로 전국 구석 구석 다양한 형태로 그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다. 땅끝 마라도에서부터 군대, 학교, 교도소, 한 때는 북한의 금강산에까지. 그 끝을 모르는 질주는 사람이 살고 소비가 가능한 지역이라면 어디서든 이어질 기세다. 편의점은 대개 대기업 산하의 프랜차이즈 형태로 존재하는데 본사와 가맹주 그리고 점원의 고리로 연결된 갑을 종속관계의 불편함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업계 폐단일 것이다. X세대로 일컬어지던 지금의 30-40대들은 한 때 자신의 젊은 시절, 돌연 나타난 '편의점'이라는 이국적 소비자본주의의 아이콘을 열렬히 환호하며 선망했다가 현재는 창업의 한 형태로 눈길을 돌려 사업에 뛰어들게 되면서 '갑'이면서도 '을'의 입장에 놓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스스로 몸을 던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 선진문화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편의점은 지금, 독거노인과 88원 세대의 한끼 식사를 판매하고 청소년들의 일탈행위를 방관하며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와 인격적 모독도 감내하며 참아내는 직원들의 답답한 속을 대변하는 등 시대의 어두운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편의점이 의미하던 서구문화와 편리성은 저자의 사회학적 측면에서 관찰되고 파헤쳐지길,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장점보다 간과되고 있는 단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편의점이 지역화와 토착화를 거쳐 현지인들에게 좀 더 친근하고 경쟁력있게 다가선 것은 사실이나, 1인 가구와 핵가족의 확산으로 인한 소비 주체의 개인화는, 쉽고 빠르게 쓰고 버리는 소비 문화를 조장하고 그것은 자연히 현대사회의 자본주의 체제의 필요악으로서, 신자유주의의 통치 장치로서 편의점이라는 만능 복합 생활 거점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편의점을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발견 장소로서 각자가 어떠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이용해야 할지에 대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마인드가 새삼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핵심이다. 또한 그것은 '편의점 사회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편의점의 온갖 혜택과 안락함에 길들여진 우리로서 다시금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위를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해답에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지금도 우리 나라 3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g25, CU는 자체 개발 브랜드 및 고객 만족 응대로 더 이상 좁혀질 수 없는 그 들만의 전쟁터에서 오늘도 24시간 소리없는 싸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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