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읽는 시
김남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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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나 KTX로 곧장 갈 수 없는 곳이어서인지

통영은 예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으면서도

두 해 전에야 처음 찾게 되었다.

 

 

박경련에 대한 백석의 사랑은 얼마나 열렬했기에

그 시절 백석은 통영에 여러 번 발걸음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 즉 박경련이 산다는 명정골까지 가고서도 만나지 못하고

그 근처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충렬사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았을

백석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충렬사에 예정보다 한참 머물렀다.

 

백석이 남쪽의 친구 신현중에게 써 보낸 시의 제목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고, 통영에 동행했던 친한 친구이고 당시 약혼자가 있었던 신현중이 박경련과 결혼했다는 사실은 통영 여행 한참 후에 알았다.

 

 

연고 없는 곳에서 직장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때가 있었다.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서 고기도 척척 주문해 먹는 나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금방 달려와 줄 수 없는 곳에서 홀로 일상을 꾸려 간다는 건, 훨씬 막막하고 낯선 여행이었다.

이 책 <길 위에서 읽는 시>는 방 한 칸 속 내가 어떤 존재인지 체감하게 되었을 때 만나서 더더욱 각별했다.

 

북방 시인의 작품은 한반도를 훌쩍 뛰어 넘어 파키스탄 산간 마을 심샬에 가닿는다. 내가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 추위처럼 급습해 오는 쓸쓸함, 그러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힘을 내고 견디게 해 주는 그 무엇, 그런 것을 느끼며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혼자라서 절실히 다가오는 감정 속에서도 백석, 김남희 작가님, 알리네 가족을 만나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방 한 칸 속 나는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아이슬란드, 키오산로드, 에티오피아, 칠레 등을 슝슝 다녀왔다.

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사람들과 동물들과 나무들을 만났다.

 

뚜벅이 여행자라서 짐 줄이기가 급선무인 나는 실용적 이유로 시집을 챙겼었는데, 시를 통해 여행의 의미를 몇 곱절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도레미파솔라

이제 내게 시는 그렇게 한 음계 내에서 제일 높은 음, 꽉 짜인 일상에서 가장 많이 에너지를 모아 소중히 지키는 영역이다. 또한 그 다음 음계를 향한 도전엔 Si라는 긍정, 지금껏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을 향해 눈뜨고 받아들이는 여정에 대한 긍정이다.

 

 

비명 지르지 않고, 엄살떨지도 않고 담담하게, 눈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흔들리다가 가지 몇 개쯤은 내어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끝내 서 있는 나무처럼 그렇게 지내자 생각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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