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의 집을 치우는 견적을 정확히 내겠다며 내가 건넨 질문하나하나가 아직 살아 있던 그의 가슴 곳곳을 예리하게 찔러대는 송곳이 되지는 않았는지, 건넨 단어 하나하나가 자기의 죽음을 실감케 하는 비정하고 뼈저린 암시가 되지는않았는지. 그저 미안하고, 부끄럽고, 고개 들 염치도 없다. 신이 계신다면, 그 남자가 생전에 의지하고 믿었던 신이 어딘가에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그 품으로 불러 단 한 번만 따스하게 안아주실 수는 없는지.
엄마가 괜찮은가? 슬퍼하시나? 기운 내고 계신가?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좀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선해드려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 P70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 P245
삶에서 파생하는 여러 고민을 한 번이라도 내재화해 성숙시킨 적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