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편지 쓰는 시간 -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배달된 손으로 쓴 편지
니나 상코비치 지음, 박유신 옮김 / 북인더갭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신용카드 고지서, 공과금 통지서. 우편함에서 편지찾아보기가 힘들다. 죄다 인쇄된 봉투에 때맞춰 돈 내라는 혹은 돈 냈다는, 편지를 가장한 고지서와 영수증들 뿐. 멀리 전학 간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고선 이제나 저제나 답장이 언제 올까. 우편함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그 시절은 이제 옛말이다. 그래서일까. 간혹 누군가에게 손 편지를 받게 되면 어느새 그 시절 꼬마아이로 돌아가 조심스레 봉투를 뜯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스마트폰 메신저로 들어온 메시지처럼 날름 읽어버리기에는 그 편지가 너무 아까워서. 한 줄 한 줄 꾹꾹 눌러쓴 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나와 함께 있었을 때 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본질을 내 손으로 만지고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40여년의 세월 동안 언니와 주고받은 엽서, 생일카드, 편지처럼 종이에 씌어 진 글들입니다. 이런 글들을 손으로 만져보면 나는 아직도 언니를 품에 안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정말 실제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오래도록 안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45p)

피터가 특정한 수신인(바로 나!)을 위해서 어떤 사건을 일정한 모습으로 만들고 다듬었다는 것이 바로 편지가 가진 고유한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편지는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유일무이합니다.”(103p)

 

<혼자 편지 쓰는 시간>는 낡은 저택에서 우연히 발견된 100년이 훨씬 넘은 편지꾸러미로부터 출발한다. 저자는 100년 전,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어머니와 주고받은 사랑스럽고 위트 넘치는 편지를 하나씩 읽어나가며 편지지 한 장이 가진 강력한 힘에 흠뻑 젖어든다. 그리고 그녀는 100년 전에 쓰여 진 편지꾸러미를 계기로 연인, 가족, 친구들이 서로 주고받았던 편지, 그리고 그 편지를 통해 들여다 본 그들만의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손 때 묻은 편지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책상 서랍 한견에 모아둔 편지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썼던 편지들도, 또 내가 보낸 그 편지를 그 사람이 아직 가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던 그 사람에게 문자나 이메일 대신 손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그리운 마음, 미안한 마음, 내 속에 담긴 이야기는 하루에도 수 십 번 울려대는 카카오톡 메신저보다는 시간을 내어 직접 고른 편지지에 손수 담아내는 것이 그 진심을 전하기에 훨씬 알맞다.

 

종이, 그리고 펜만 있다면 멀리 있던 그대와 나 사이의 거리는 한 순간에 가까워질 수 있다. 종이, 그리고 펜만 있다면 멀어져 있던 그대와 나 사이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오래된 편지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그 두드림을 못 들은 체 하지 않고 책상 깊숙이 넣어둔 편지지를 꺼낸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펜을 골라서 그대에게 못다 전했던 내 마음을 써내려 간다.

지금은 이렇게 혼자 쓰는 편지이지만, 이 편지가 그대에게 가 닿을 때 혼자가 아닌 우리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쓰여 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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