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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 우리 시대 명장 11인의 뜨거운 인생
김서령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픽션보다 넌픽션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가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흔히 소설같은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무언가 성취한 사람의 삶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특히 살아오는 중에 체득한 그 사람의 삶의 정수가 어떤 개안을 주기도 하는 것이 감탄사로 찍히는 점도 좋다.
독서라는 행위가 간접경험을 통한 삶의 확장에 있다고 본다면 사람에 대한 논픽션을 읽는 다는 것은 거기에 딱맞는 말이겠다.
이런 인터뷰집은 이미 수십(백?)종이 나와 있으나 대부분의 책들은 이력서 나열식의 외면적 모습을 보여줄뿐 그 사람이 지닌 삶의 비의라던가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있는 데 반하여 전작 '여자전'을 비롯한 이 책의 저자는 대상자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름은 잊었는데...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충격처럼 보여주던 어떤 초상전문의 사진 작가 작품들이 떠오른다)
수없이 인터뷰 당했을 , 그래서 상투적이 되거나 얼마간의 방어기제를 품고 인터뷰에 응했을 그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그 이면을 어떻게 그렇게 잘 끄집어 내 보여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 이 서투른 인터뷰가 투르니에식 외면일기가 될수 있기를 감히 기대한다'며 '내면일기가 존재의 비밀을 꿰뚫고 삶의 경계를 넓히듯 외면일기 또한 생의 지혜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하여 내면세계를 못 보여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내게는 그러므로 이는 겸사처럼 들린다.
여기에 실린 열한 분 중 첫머리에 실린 최인호편을 예로 들자면 이런 아포리즘을 만나게 된다.
- 그는 교황바오로 2세가 임종시에 했다는 말을 세번이나 연거푸 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중략) 행복을 말하면서 그는 '조수간만의 차'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는데 나는 그 의미를 그의 생각과 얼추 비슷하게 이해 했다고 믿는다. (중략) 조수간만의 차. 그건 행복이라는 밀물과 불행이라는 썰물사이를 오가는 간만의 차를 말함이다. (중략) 지금 이만큼 행복하다는 것은 반대쪽 썰물이 그만큼 멀어 절망과 공포의 불행감도 꼭 그만큼 아뜩하게 버거웠던 순간이 있었다는 의미이고, 교황의 말도 바로 그런 뜻이라고 최인호는 이해하고 싶어 했다.
-- '살아 있는 건 살아 있는게 아니고 죽은 것도 죽은 게 아니예요. 이거 한번 생각해 봐요. '부모미생전, 천지미분전 父母未生前 天地未分前' 우주 역사에 비하면 인류의 삶이란 전부가 동시대예요. 삶과 죽음이 따로 없어요 우리 삶은 그대로 전생이고 영혼이라고요.' (굉장한 최인호! '견습환자'의 재기발란함과 '별들의 고향'에서의 가벼운 최인호는 까마득하다. 아니 이 말 속에 다 녹아 있는 건가? 마치 오도송같다.)
그가 '왕도의 비밀' 쓰고 있을 때 답사 나간 만주벌판에서 광개토대왕의 비밀을 풀 우물 井자가 새겨진 기왓장을 주어 들었을 때 마른하늘에서 번개가치며 폭우가 내렸다거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손을 당겨 책꽂이에 꽂힌 '맹자'에 닿게하여 퇴계 집앞에 있는 경정이라는 우물얘기를 쓸 때 퇴계가 왜 그 우물을 그리 귀하게 여기었는지 알게 했다는 전률적인 에피소드는 차라리 양념이다. 나머지 열 분과의 대화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는 흥미진진한 얘기들과 함께,잠시 삶의 옷깃을 여미게할 숙연한 깨닭음들이 있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친구에게, 혹은 아는 분들에게 슬며시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