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 개성 넘치는 18인의 집 아름다움에 - 홀리는 - 자연에 - 끌리는
김서령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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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안팔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읽은만한 책이 드믈다는 얘기도 된다.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이 감성팔이 아니면 실용서적이 주를 이루고 있는 중에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같다. 집과 사람이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김서령의 시선은 깊고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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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 우리 시대 명장 11인의 뜨거운 인생
김서령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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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픽션보다 넌픽션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가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흔히 소설같은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무언가 성취한 사람의 삶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특히 살아오는 중에 체득한 그 사람의 삶의 정수가 어떤 개안을 주기도 하는 것이 감탄사로 찍히는  점도 좋다.  

독서라는 행위가 간접경험을 통한  삶의 확장에 있다고 본다면 사람에 대한 논픽션을 읽는 다는 것은 거기에 딱맞는 말이겠다. 

이런 인터뷰집은 이미 수십(백?)종이 나와 있으나 대부분의 책들은  이력서 나열식의 외면적 모습을 보여줄뿐 그 사람이 지닌 삶의 비의라던가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있는 데 반하여  전작 '여자전'을 비롯한 이 책의 저자는 대상자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름은 잊었는데...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충격처럼 보여주던 어떤 초상전문의 사진 작가 작품들이 떠오른다)

수없이 인터뷰 당했을 , 그래서 상투적이 되거나 얼마간의 방어기제를 품고 인터뷰에 응했을 그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그 이면을 어떻게 그렇게 잘 끄집어 내 보여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 이 서투른 인터뷰가 투르니에식 외면일기가 될수 있기를 감히  기대한다'며 '내면일기가 존재의 비밀을 꿰뚫고 삶의 경계를 넓히듯  외면일기 또한 생의 지혜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하여 내면세계를 못 보여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내게는 그러므로 이는 겸사처럼 들린다. 

여기에 실린 열한 분 중 첫머리에 실린 최인호편을 예로 들자면 이런 아포리즘을 만나게 된다. 

- 그는 교황바오로 2세가 임종시에 했다는 말을 세번이나 연거푸 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중략) 행복을 말하면서 그는 '조수간만의 차'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는데 나는 그 의미를 그의 생각과 얼추 비슷하게 이해 했다고 믿는다. (중략) 조수간만의 차. 그건 행복이라는 밀물과 불행이라는 썰물사이를 오가는 간만의 차를 말함이다. (중략) 지금 이만큼 행복하다는 것은 반대쪽 썰물이 그만큼 멀어 절망과 공포의 불행감도 꼭 그만큼 아뜩하게 버거웠던 순간이 있었다는 의미이고, 교황의 말도 바로 그런 뜻이라고 최인호는 이해하고 싶어 했다. 

-- '살아 있는 건 살아 있는게 아니고 죽은 것도 죽은 게 아니예요. 이거 한번 생각해 봐요. '부모미생전, 천지미분전 父母未生前 天地未分前' 우주 역사에 비하면 인류의 삶이란 전부가 동시대예요. 삶과 죽음이 따로 없어요 우리 삶은 그대로 전생이고 영혼이라고요.' (굉장한 최인호! '견습환자'의 재기발란함과 '별들의 고향'에서의 가벼운 최인호는 까마득하다. 아니 이 말 속에 다 녹아 있는 건가?  마치 오도송같다.) 

그가 '왕도의 비밀' 쓰고 있을 때 답사 나간 만주벌판에서 광개토대왕의 비밀을 풀 우물 井자가 새겨진 기왓장을 주어 들었을 때 마른하늘에서 번개가치며 폭우가 내렸다거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손을 당겨  책꽂이에 꽂힌 '맹자'에 닿게하여 퇴계 집앞에 있는 경정이라는 우물얘기를 쓸 때 퇴계가 왜  그 우물을 그리 귀하게 여기었는지 알게 했다는 전률적인 에피소드는 차라리 양념이다.  나머지 열 분과의 대화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는 흥미진진한 얘기들과 함께,잠시 삶의 옷깃을 여미게할 숙연한 깨닭음들이 있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친구에게, 혹은 아는 분들에게 슬며시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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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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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플 경우, 내 몸은 두가지로 반응한다. 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간섭을 배제하고 자정작용에 의해 스스로 나으려는 동물적 본능에 자신을 맡겨두는 것, 그래서 아무런 음식도 입에 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습관과 이성이 시키는 대로 약이던 음식이던 배불리 먹어서 몸을 보하는 것,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인지 나로서는 잘 판단할수
없다. 다만 상반된 두 방식 모두 그때 그때 내 몸이 원하는 방식이란 확신은 있다.

무엇이 진보며 무엇이 보수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내게 진보와 보수의 개념 역시 그렇다. 진보와 보수가 민족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 민족을 하나의 몸이라고 본다면 진보와 보수가 지향하는 바는 다를지언정 이 둘 모두가 몸- 민족이 원하는 치유 또는 건강 유지의 합일점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가 목표하는 바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나의 이 생각은 '박노자, 허동현 교수의 한국 근대 100년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비록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우리나라 인문 문화사에 기록되어진 숱한 논쟁들처럼 물고 뜯는 난장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함께 모색하며 고민하는 두 분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 책은 진보주의자 박노자 교수와 보수주의자 허동현 교수가 100년전 근대 여명기의 상황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화두를 놓고 반면교사로서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데서출발한다. 되짚어 보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사는 단순히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나의 실존적 상황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내가 당장 국제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우리 앞에는 긴 미래가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지만 어떤 모습이 될른지는 불투명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늠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반복된다' 는 명제하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닐까? 그러므로 하나의 지표가 되는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꿰뚫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더우기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시선은 상호보완적 상승작용으로 역사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이 책은 그밖에도 많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 내용을 보강하는 많은 삽화며 '그래서?'의 해답편이 되는 두 교수의 좌담이며 부록으로 딸린 원전 읽기(단순한 출전 소개가 아니라 주요 원전이 그대로 실렸다) 등이 그것이다.

역사물은 고리타분하다고? 실제로 그렇게 여기는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상당히 아쉬웠다.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고 하지만 양식있는 논쟁의 전개들은 단숨에 독파될 만큼 신선한 재미를 던져주는 한 편, 열강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나아갈 길에 대한 우려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했다. 이 책, <우리 역사 최전선>을 꼭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목차만이라도 읽어 보시기를...

(박노자 교수...1973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고작' 서른 둘. 한국역사에 대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1989년, 레닌그라드 대학교의 동방학부 조선사학과에 들어가서 부터이다. 그 짧은 공부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외국인인 사람이 이렇듯 깊은 성찰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놀라움이다. 그 바탕에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어 더욱 그렇다. 단순히 '훈수꾼이 바둑을 더 잘 두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는 몇십년 앞을 내다보는 천재이며-국사와 민족의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하며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것임을 주장하는 점이 그렇다- 우스개 처럼 말하자면 전생에 우리나라 역사학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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