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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몸이 아플 경우, 내 몸은 두가지로 반응한다. 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간섭을 배제하고 자정작용에 의해 스스로 나으려는 동물적 본능에 자신을 맡겨두는 것, 그래서 아무런 음식도 입에 대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습관과 이성이 시키는 대로 약이던 음식이던 배불리 먹어서 몸을 보하는 것,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이 옳은 방식인지 나로서는 잘 판단할수
없다. 다만 상반된 두 방식 모두 그때 그때 내 몸이 원하는 방식이란 확신은 있다.
무엇이 진보며 무엇이 보수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내게 진보와 보수의 개념 역시 그렇다. 진보와 보수가 민족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 민족을 하나의 몸이라고 본다면 진보와 보수가 지향하는 바는 다를지언정 이 둘 모두가 몸- 민족이 원하는 치유 또는 건강 유지의 합일점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가 목표하는 바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나의 이 생각은 '박노자, 허동현 교수의 한국 근대 100년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우리 역사 최전선>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비록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우리나라 인문 문화사에 기록되어진 숱한 논쟁들처럼 물고 뜯는 난장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을 함께 모색하며 고민하는 두 분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 책은 진보주의자 박노자 교수와 보수주의자 허동현 교수가 100년전 근대 여명기의 상황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화두를 놓고 반면교사로서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데서출발한다. 되짚어 보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사는 단순히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나의 실존적 상황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내가 당장 국제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우리 앞에는 긴 미래가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하여 계획을 세우지만 어떤 모습이 될른지는 불투명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늠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반복된다' 는 명제하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닐까? 그러므로 하나의 지표가 되는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꿰뚫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더우기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시선은 상호보완적 상승작용으로 역사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이 책은 그밖에도 많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 내용을 보강하는 많은 삽화며 '그래서?'의 해답편이 되는 두 교수의 좌담이며 부록으로 딸린 원전 읽기(단순한 출전 소개가 아니라 주요 원전이 그대로 실렸다) 등이 그것이다.
역사물은 고리타분하다고? 실제로 그렇게 여기는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상당히 아쉬웠다.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라고 하지만 양식있는 논쟁의 전개들은 단숨에 독파될 만큼 신선한 재미를 던져주는 한 편, 열강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나아갈 길에 대한 우려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했다. 이 책, <우리 역사 최전선>을 꼭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목차만이라도 읽어 보시기를...
(박노자 교수...1973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고작' 서른 둘. 한국역사에 대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1989년, 레닌그라드 대학교의 동방학부 조선사학과에 들어가서 부터이다. 그 짧은 공부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외국인인 사람이 이렇듯 깊은 성찰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놀라움이다. 그 바탕에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어 더욱 그렇다. 단순히 '훈수꾼이 바둑을 더 잘 두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는 몇십년 앞을 내다보는 천재이며-국사와 민족의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하며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것임을 주장하는 점이 그렇다- 우스개 처럼 말하자면 전생에 우리나라 역사학자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