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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딸이 아닌 엄마 - 엄마에게 받은 삶을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기까지
김현경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거대한 관계의 망 속에서 삶을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엄마와 딸'이라는 이름이 맺어주는 유대는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밀접하면서도, 때로는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이자 무거운 굴레로 다가오곤 하지요. 아이를 낳아 스스로 엄마가 되고, 누군가의 든든한 보호자가 된 이후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딸'이라는 아린 이름을 품고 살아갑니다.
최근 출간된 김현경 작가님의 "비로소 딸이 아닌 엄마" [엄마에게 받은 삶을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기까지]는 바로 그 복잡하고도 애틋한 모녀 관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에세이입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온 심리상담사이자 명상가인 저자 역시, 정작 자신의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흔들리고 작아지던 한 명의 딸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깊은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며, 비로소 타인의 기대나 대물림된 삶이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의 삶'에 도착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기록한 한 편의 마음 다큐멘터리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고, 완전한 독립된 어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출산이나 나이테가 쌓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엄마의 시선, 그리고 엄마가 내게 남긴 무의식의 상처와 은연중에 주입된 삶의 방식을 알아차리는 일에서 비로소 출발합니다. 엄마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와 상처를 무조건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무거운 굴레를 내려놓고 온전히 나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겠다는 다짐인 셈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해지는 것은, 저자가 차가운 전문가의 위치에서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아파하고 흔들렸던 한 인간으로서 진솔한 고백을 건네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마음은 그토록 잘 보살피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는 왜 그토록 길을 잃었는지, 그 애증과 그리움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져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단순히 모녀 갈등의 해법을 기술하거나 감정에만 호소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상실의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슬픔의 터널을 어떻게 품어 안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한 인간을 더 성숙한 내면으로 이끄는지를 밀도 있게 추적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딸로, 또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 살아오며 정작 '나'라는 존재를 잊고 지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자는 엄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애도하는 일련의 여정을 통해,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왜곡되었던 마음의 결을 바로잡고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에 이르는 길을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언어로 안내해 줍니다. 복잡한 마음의 결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저자의 통찰은, 일상에 지쳐 내면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을 선사합니다.
《비로소 딸이 아닌 엄마》는 대물림되는 정서적 유산을 깊이 돌아보게 만들며, 동시에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나의 삶을 채워갈 것인가"라는 묵직하고도 다정한 질문을 던집니다.
마음의 정화가 필요하고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고 싶은 날, 조용히 책장을 펼치고 한 줄 한 줄 밑줄을 그어가며 읽기에 더없이 좋은 책입니다. 오늘 이 책과 함께 내면의 깊은 곳을 토닥이는 평안하고 온기 가득한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