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좋은 기회로 가제본을 받아 미리 책을 읽게 됐다.

일제강점시기 기생, 독립운동가, 고군분투하는 청년들, 호위호식하는 재력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한편의 영화 또는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본 느낌이었다.

기생이었다가 노래와 춤으로 가수, 배우까지 된 여자들의 사랑과 인생이야기가 영화 <해어화>와 <사의 찬미>를 생각하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일제강점기의 격동을 잘 나타낸 건 '파친코'인 것 같고, 이 책은 그 당시 전반적인 부류의 각각 이야기들을 엮어놓아 잔잔한 매력이 있었다.

책을 느리게 읽는 나라서 600p의 책을 읽기에 더디긴 했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할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_
📚.......
92p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하기도 하지.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를 붙잡을 수 없어.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인연이 다하면 한순간에 낯선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그 어떤 변수에도 상관없이 영원히 너에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

100p "어두문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도 없거든. 슬플땐 그걸 기억하렴."

131p 개화의 계절이 끝나도 동백은 다른 꽃들처럼 갈변하거나 꽃 잎 한 장씩 떠나보내며 힘없이 져버리지 않는다. 흠 하나 없이 온전한 채로 심장처럼 붉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꽃 한 송이 전체가 툭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동백은 땅에 떨어지더라도 처음 피어났던 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아름답다.

188p "철로에서 작은 소년이 놀고 있다고 가정해보세. 갑자기 저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는데, 그 아이는 너무 어려서, 혹은 겁에 질려서 스스로 목숨을 구할수 없는 상황이야. 그 모습을 보면서 자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자, 거시적으로 보면, 저 아이도 결국엔 죽을 게 아닌가. 지금 당장 죽지 않아도 향후 60여 년 안에는 죽고 말겠지. 그러니 굳이 내가 힘을 빼가며 저 아이를 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냥 내 일이나 하는 게 낫겠군.' 그런 생각이 합리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어."

315p "앞으로 정호 동지의 이름을 걸고 쓰는 모든 글은 정직하고 선한 믿음으로 쓰여야만 합니다. 그게 바로 좋은 이름을 갖는다는 의미니까요. 가문이 어떤지,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유명한지가 아니라요."

372-373p "우리 모두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냥 사랑에 빠지고 마는 것들이 있잖아요. 사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진짜 사랑이 아니기도 하고요."

514p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546p 인생은 곧 바퀴였다. 영민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그 바퀴를 잘 굴려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반면 어리석거나 운이 나쁜 사람은 그 바퀴에 잘못 깔려 무참히 짓밟힐 수도 있었다. 그 두 극단 사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그 바퀴를 앞쪽으로 굴러가게 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605p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