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두 얼굴 - 조선의 권력자들이 전하는 예와 도의 헤게모니 전략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4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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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지도를 펼치고 낯선 도시를 신중하게 살펴본다. SNS 핫플레이스는 물론이고 평소 가고 싶었던 곳들을 하나씩 리스트에 올린다. 어김없이 그 목록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하나쯤 들어간다.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더라도 그 도시의 전통과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유산은 방문 목록에 반드시 포함된다. 그리고 그 건축물의 예술성과 장엄함에 감동하며 인스타그램을 채울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을 둘러보면서 이곳을 둘러싼 정치 세력 간의 긴 투쟁의 역사나, 루브르궁의 치밀한 공간구조가 샤를 5세의 강력한 왕권에 힘을 싣게 해 준 결정적인 한 요소였다는 사실을 알고 바라본다면, 이 위대한 세계문화유산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문화유산에 작동하는 권력과 통치의 기술이 조선이라고 예외였을까?

 

이 책은 문화유산이 권력의 정통성과 지배이념,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권력 장치였다는 흥미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왕릉과 궁궐, 성곽과 성균관 그리고 서원 등 조선왕조가 남긴 문화유산이 장대한 규모와 엄숙한 공간, 체계적인 구성으로 권력자의 신성함을 각인시키면서 결국에는 권력 자체에 권력을 부여하고 정당화하는 도구였다는 것이다.

 

왕릉은 왕권 정당화와 권력 승계의 영속화를 위한 상징적 기재이고, 조선왕조의 5개 궁궐은 지배세력 간 투쟁의 장이자 왕권, 그 자체이며 표상이었다. 성곽과 읍치는 지배세력과 하층민의 주거지역을 구별하는 차별과 배제의 테두리였으며, 향교와 서원은 지배질서 유지와 계급 재생산을 위한 유교화 작업의 전진기지였다.

 

지배와 통치는 무력과 힘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아름답고 위대한 건축물로도 가능하다. 감동하고 우러러보며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 조선의 권력자들의 노련한 지배 방식이었다.

 

주말 가까운 궁궐이나 왕릉 나들이에 나서볼까 싶다. 그리고 그 찬란한 광휘 아래 어려있는 그림자도 함께 바라보며 찬찬히 거닐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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