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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낸 한 철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3
랭보 지음, 김현 옮김 / 민음사 / 1974년 5월
평점 :
절판
「저는 과부예요... 과부였어요.... 그래요, 저도 예전에는 성실했어요, 저라고 해골이 되라고 태어났겠어요! 그이는 어린아이였죠.... 그이의 신비한 섬세함에 홀렸드랬죠. 저는 그이를 따라다니느라고 저의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온통 잊었어요. 무슨 놈의 인생인지! 진실된 삶은 없어요. 우리는 세상에 있지 않아요. 저는 그가 가는 대로 따라갑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런데 빈번히 그이는 저에게 화를 냅니다. <저 같이 가엾은 사람에게요.> 악마! 그이는 악마예요. 아시죠, <사람이 아니에요.>
「그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난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아. 알다시피, 사랑은 재창 안 해야 하는 것인데, 여자들은 안전한 자리를 바랄 수밖에 없거든. 자리를 얻으면, 마음과 아름다움은 저리 가라지. 차디찬 멸시만이 남는데, 그게 오늘날 결혼의 양분이야. 또는 행복의 징표가 있어서, 나의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었을 여자들을 알아보지만, 그녀들은 장작더미 같은 다정다감한 짐승에게 맨 먼저 먹히지....'
「저는 수치를 영광으로, 잔인함을 매혹으로 만드는 그이의 말에 귀기울여요. '난 머나먼 종족의 사람이야. 내 조상은 스칸디나비아 사람이었어. 그들은 서로의 늑골에 구멍을 내고 피를 마셨지....(중략)..... 나는 나의 풍요에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기를 바라. 난 결코 일하지 않을 거야...' 여러 날 밤, 그의 악마가 저를 사로잡아, 우리는 서로 뒹굴고, 저는 그이와 싸우곤 했어요! 밤이면, 빈번히 그이는 술에 취해 거리나 집에 매복하여, 저를 몹시 놀라게 했어요. '정말로 내 목을 베겠대. 메스꺼울 거야.' 오! 그이가 죄의 바람을 쐬며 걷고 싶어하는 그 날들!
「때때로 그이는 부드러운 사투리로, 회개하게 하는 죽음에 대해, 분명히 실존하고 있는 불행한 자들에 대해, 힘든 일에 대해, 가슴을 찢는 출발에 대해 이야기해요. 빈민굴에서, 우리가 술에 취했을 때, 그이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 말하자면 비참의 가축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울었어요. 그이는 껌껌한 거리에서 취객들을 일으켜주었어요. 그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못되게 구는 한 어머니를 측은하게 여겼어요.─그이는 교리문답에 가는 소녀처럼 얌전히 갔더랬어요.─그이는 상업, 예술, 의학 등 모든 것에 견식이 있는 척했어요.─저는 그이를 따라다녔죠. 그래야지요!
- 헛소리 [1] 중.
랭보의 시집을 손에 잡으면 마치 그의 생애와 그가 생전에 창조했던 모든 마술적인 언어들이 내 영혼에 스며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릴 때 부터 극히 조숙하였던 그는 대부분의 시를 스무 살 이전에 집필하였고 그 후엔 절필하여 삶을 마감할 때까지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니며 무기상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타락했다. 철저한 망가짐이 그의 감각을 착란시켰고, 그의 모든 관점을 새로이 바꿔놓아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모든 언어를 그의 세상속의 언어로 재창조하였다. 그가 홀로 시를 집필하는 다락방에서는 웃음 소리, 흐느낌, 절규에 찬 외침 등이 들렸다고 한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천재에게의 깊은 통찰은 절망과 고독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사는 건 한번으로 족하다며 자신의 삶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라고 여긴 그가 시를 통해 어렴풋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