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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하지만 뾰족한 -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그림 같은 대화
박재규 지음, 수명 그림 / 지콜론북 / 2017년 10월
평점 :
담담한 하지만 뾰족한
박재규 작가님의 책을 읽고, 강연에도 다녀왔다. 작가님은 그 강연을 ‘이런 자리’라고 하셨다. 자신이 쓴 책을 설명하시면서, 이 책들 덕분에 이런 자리가 생겼다고.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인상 깊은 말들이 많았다. 작가님이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셨을 때를 설명하시면서 ‘그 때의 나는 요원을 만나면 끊임없이 피하기만 하는 네오 같았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귀에 마음에 콕콕 박혔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의 리스트에 매트릭스가 있어서 더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그렇다. 사실 나는 어쩌면 아직 요원을 만나기도 전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아직 학교에 다니면서, 내 능력을 끊임없이 시험받기 전의 안일한 상태이니까. 그냥 그 상태에서 자꾸만 사회가 만들어둔 거대한 불안을 느끼는 거다. 미래의 내가 걱정이 되어서.
처음에 이 책을 보고는 자꾸만 그림에 마음이 갔다. ‘수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분의 일러스트는 어쩐지 조르주 쇠라의 그림이 생각났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뾰족한 마음들을 어르고 달래어 따뜻한 이불위에 나를 눕혔다. 그림도 글자도, 제목처럼 담담해서 나를 눕히기에 충분했다. 감리를 한 후에 1도 인쇄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편집자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종종 나를 때리는 문장과 그림에 플라스틱 색종이를 붙였다.
p116, ‘무언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건 모든 인간의 바람이겠지요. 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는 무수한 소설들이 생각났다. 한국의 어떤, 가족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이야기들. 우리가 얼마나 연연하며 살 수 밖에 없는지를 말해주는 이야기들. 심지어 나조차도.
‘한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 탯줄을 통해 들어오는 영양분에 연연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나서는 어떤가요? 부모 혹은 누군가의 보살핌에 연연하지 않고서는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없지요. 성인으로 성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를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며, 시시각각 배설에 연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무엇인가에 연연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다.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남이 곧 무언가에 연연함과 동어가 된다는 것은 외롭지 않게 어떤 것에 부대끼도록 허락된 일 같으면서도 동시에 참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그 걸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고. 그 걸 우리가 인정하고, 인식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무언가를 해나가야 한다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 『삶은 왜 의미 있는가』라는 책을 아주 조금 읽었다. 이 책은 부제도 함께 적혀있었는데, ‘속물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의 나침반’이 그 부제다. ‘속물’이라는 단어가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속물이 되고 싶지 않은, 정확히는 속물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속물근성이 내가 그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책 전부를 읽지는 못했지만 작가는, 사람들이 허무주의에 빠지고 온갖 상실감에 잠식당하는 것은 잘못된 명제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해오던 수많은 고정관념, 그러니까 ‘독단’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우리는 자주 어쩌면 매 순간 독단에 빠지는데, 아주 흔한 예로는 다음과 같다. 말로써 하는 의사소통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 그 일을 잘 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여기에는 ‘의사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논제가 존재한다. 혹은 반대로 타인의 처지에 비교하면서 자신을 아주 쓸모없는 혹은 쓸모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대부분 독단에 빠지고야 만다.
그렇게 우리는 실의에 빠진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또 한껏 슬퍼지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 검증되지 않은 논제가 내 삶을 정의하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다시 박재규 작가의 강연으로 돌아가자. 『담담한 하지만 뾰족한』은 작가가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에서 작가가 들은 답변 혹은 생각한 것을 중심으로 쓰여 있다. 그리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작은 정답 아닌 정답을 건넨다. 작가가 조언을 구한 사람들, 그러니까 어쩌면 특정한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들. 작가는 그들의 공통점을 말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 결 같이 현재의 귀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우로 현재를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에서도 반짝이며 드러나지만, 작가님은 자신의 경험들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 순간과 찰나에서 펜을 들 줄 아는. 작가님의 말대로 짧은 말의 문장이 쌓여서 언젠가 나를 바꿀 것이라 믿으며 나도 자꾸만 글을 끄적여 왔는데. 그리고 작가님이 소설이라는 장편에 도전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달았다는 그 말 까지도 내게 닿아있었다. 작가님의 말과 문장들은 내가 시도한 것 혹은 시도하지 않았던 것 사이를 넘나들며 과거의 나를 꺼내셨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다. 그림을 보면서 캄캄한 혹은 덜 캄캄한 색의 경계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빠지는 시간까지도 소중했다.
p037 ‘완벽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타인을 폄하할 필요도 없습니다. 완벽이란 애초에 신의 영역에 속한 단어니까요. 그러니 그 시간에 신이 당신에게 선물로 준 이 지구의 자연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가장 최근의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작은 담요 같았고, 어쩌면 따뜻한 코코아 같기도 한. 가장 추운 온도의 겨울밤, 우리에게 필요한.